두꺼운 옷을 입고 있었다 / 최광임 사랑하지 못한다는 것은, 밥 때를 비켜 혼자 아무렇게나 끼니를 때우는 일이다 식은 밥에 고추장 얹고 통깨 몇 알 뿌려 비빌 때의 느낌과 타월로 제 몸의 때를 밀 때의 퍽퍽함이나 같은 일이다 싱크대 위, 흐린 햇살을 쳐놓고 선 채로 쓸쓸함을 뜬다 식도를 타고 오르는 간밤의 취기 나 말고 또 누구를 만났었던가 붉은 밥 수저 안에서 역류성 식도염이 따끔 거린다 사람들은 저마다 두꺼운 옷을 입고 있었다 겹겹의 웃음이 번지고 있지만, 장기 공연하는 배우들 같았다 말이 건배를 하고 술잔이 건배할 때도 형광등보다 도수 높은 쓸쓸한 눈빛들, 외투 속 어깨를 심하게 들먹이며 골목 어디로 흩어지던 사람들 누군가에게 사랑을 받는다는 것보다 사랑 줄 누군가가 없다는 것은 더 쓸쓸한 일이다 사랑이 없다는 것과 사랑해야 할 사람이 없다는 것은 다른 일, 유치환의 행복이, 한도 초과 카드 명세표처럼 거치적거린 날 살얼음 얼던 간밤의 거리는 무표정하다 누군가 혼자서 밥을 뜨고 두꺼운 외투를 걸치는 하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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