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왁, 숨꽃
박금아
다가갈수록 바다는 사납게 으르렁거렸다. 외지인의 접근을 두려워하는 파도의 울부짖음이랄까. 바닷새의 울음까지 겹쳐 2월의 고내포구는 난장이었다. 그 속을 뚫고 끊길 듯 가느다랗게 들려오는 소리가 있었다. 절절함이 걱정을 한숨으로 내뿜는 호요바람 소리는 아니었다. 죽을 고비 끝에 간신히 안착한 철새의 마지막 울음 같기도 하고, 유년의 늦가을 밤 푸른 어둠을 가르며 마당 한 구석에 떨어지던 비파음 같기도 했다.
숨비소리라고 했다. 파도소리 높고 크다 해도 속을 비워내는 도저한 소리에는 부서져버렸다. 자신의 것을 다 비워야 날 수 있다는 갈매기가 해녀의 머리 위에서 울음을 더해주었다. 속을 채우기 위해 살아간다는 세상에서 속을 비워야 한다니 가능이나 한 일일까. 사람 속이란 얼마나 깊기에 그토록 많은 숨비소리를 담고 있는 걸까. 얼마를 뱉어내야 다 비워지는 것일까.
제주 올레길을 걷던 중이었다. 방파제 끝에 섰다. 할아버지 한 분이 등대를 등받이 삼아 소주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아내를 기다린다며 바다를 가리키는 손끝이 떨렸다. 두 시 방향에 테왁 하나가 떠 있었다. 너울을 타는 모습이 이랑에 피어난 한 송이 흰 꽃 같았다. 바닷물이 출렁이더니 해녀가 올라왔다. 그녀의 가슴 아래로 테왁이 사라지고 숨비소리가 났다. 할아버지는 살짝 손을 들었던가. 두 시간이 지났다는 말에 늘 아내를 기다리느냐고 물었다. 할아버지는 머뭇하더니 깔고 앉았던 고무방석을 내밀었다. “아덜이 바다에….” 그리고 한 시간이나 되었지 싶다. 할아버지의 입으로 살아온 내력이 드문드문 내비쳤다.
긴 숨비소리 끝에 해녀 할머니가 바다에서 걸어 나왔다.
"양, 하영 해젼?”
망태기를 받아들며 많이 잡았냐고 묻는 말에 할머니는 아무런 표정이 없다. 할아버지는 그런 아내‘속을 바당에 다 묻어버린 사람'이라고 했다. 그뿐, 노부부는 걷는 내내 한마디 말이 없다.
바다를 빠져나온 할머니의 몸이 사시나무 떨 듯 했다. 여린 햇살이 달려와 젖은 몸을 어루만졌다. 구부러진 허리가 조금 펴지는가 싶더니 테왁 끝에 매달린 망사리 속 어물들이 진저리를 쳤다. 돌 문어는 제 속으로 여덟 개의 다리를 동그랗게 말아 넣었고, 대합조개는 입을 앙다무느라 껍데기를 딱딱 부딪는 소리를 냈다. 게들은 운명을 연대하듯 집게 다리를 물고 스크럼을 짰다. 전복과 소라가 망사리 사이로 삐죽 살을 내놓고 있었다. 삶의 자리를 떠나온 것들의 슬픔과 안간힘이 느껴졌다.
'해녀의 집'으로 향하는 할머니를 따라 걸으며 나는 기회를 보고 있었다. 할머니가 잡은 해물로 맛있는 저녁을 지어먹고 싶었다. 나는 조금 싼 값으로 살 수 있고, 할머니는‘해녀의 집'에 넘기는 것보다야 좋은 가격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아 흥정을 붙여보려던 참이었다.‘할머니!'하고 부르려던 순간에 생각을 고쳤다. 할머니의 앙상한 발목뼈를 타고 흘러내리는 가녀린 물줄기 때문이었다.
골수(骨髓)를 다한 힘이 골수(骨水)가 되어 흘러내리고 있었다. 고단한 생애를 다 받아낸 고무옷도 어찌할 수 없었던 걸까. 뼈 속 시간들이 아스팔트 위에 똑똑 찍히고 있었다. 할머니는 모든 것을 바다에 두고 온 모양이어서 길에서는 단지 몇 방울의 물방울로만 남을 것이었다. 그런데 나는 우뚝 서고 말았다. 야속한 햇볕이 지우개가 되어 할머니를 지우며 따라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시난고난의 생애는 한 나절 햇살의 시간보다 짧게 기억될까, 두려웠다.
그러나 삶이 어찌 그리 쉽게 지워질까. 사라져버리는 것처럼 보일 뿐, 굵은 힘줄로 이룬 생애는 바닷속에서나 땅 위에서 봉인된 흔적으로 남을 게다. 열세 살 때 어머니가 안겨 준 테왁을 안고 물질을 시작한 그날부터 하루하루를 땅의 끝에서 맞섰을 것이다. 그리하여 이어졌다 끊어지고, 끊어졌다가는 또 이어지는 길의 속성이 되었을 것이다. 언제 시원스레 뻥 뚫렸을까. 구불구불한 바닷길은 한 번도 쭉 뻗어본 적 없는 할머니의 시간일지도 모른다.
할머니의 닳은 슬리퍼 뒤축에 시선이 머물렀다. 220밀리, 9문쯤 되려나? 그 작은 발이 디디고 설 한 자리를 위해 할머니는 내딛자마자 바스러져 내리는 세상의 끝자리들을 수없이 딛고 일어섰을 것이다. 땅 위에 두 발을 딛고 살아야 할 운명을 거스른 채 숨을 끊고서야 오를 수 있었던 뭍의 자리는 송곳 끝 만큼이었을 터. 온 생애를 날고서야 겨우 앉을 수 있도록 허락된 겨울나무 끝가지의 새처럼, 수많은 강물을 흘려보내고서야 간신히 발끝 한 자락 세울 수 있었던 한 조각 얼음 위의 겨울 물새처럼.
어물들의 가격이 잡히지 않았다. 망사리 속 해물들이 할머니의 목숨 같았다. 숨길을 끊어가며 잡아 올린 것들을 어떻게 돈으로 매길 수 있을까. 조금 전까지 할머니의 해산물을 싸게 사먹으려고 했던 일이 부끄러워졌다. 그냥 준다고 해도 먹을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런데 구멍 숭숭한 망사리였을까. 할머니가 칠십 평생의 숨으로 지은 집은 당신의 노고를 온전히 담아내지 못했던 것 같다. 망사리 속 해물들처럼 자식들은 그 속에서 오래 버텨주지를 못했다. 육지에서 살기를 원했지만 바다의 인자가 새겨졌던 걸까. 때가 되면 돌아오는‘조금 물때'처럼, 뭍으로 나갔다가는 다시 바다로 돌아오는 생활을 반복했다. 할머니는 더 깊이 자맥질해 들어갔다. 어느 해, 재산을 털어 마련해 준 갈치잡이 배는 몇 해 못 가 아들 내외와 함께 겨울 바다에 가라앉고 말았다. 그날 후 어린 손주들은 가슴팍에서 내려놓지 못한 테왁이 되었다.
할머니의 굽은 등에 진 테왁이 바닷가 벼랑에 뜬 달처럼 보인다. 온 생애를 저장하고 있다는 등뼈. 평생을 물질로 살아온 해녀 할머니의 등보다 더 가파른 벼랑이 있을까. 뭍과 바다를 번갈아 디디는 순간에서조차도 집과 망사리 어느 한 쪽을 내려놓지 못한 등이었다. 무거운 짐 진 채 뜨거운 사막의 한가운데를 물 한 방울 없이 건너야하는 낙타의 운명에 비할까. 산 것들이 머무는 집의 무게가 오죽이나 무거운가 말이다.
고내에서는 밤이면 테왁이 절벽을 딛고 오른다고 했다. 땅 끝 한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테왁에 생애를 넣어 지고서 빗창 하나만을 든 채 하루에도 수십 번 천길 물속으로 몸을 던지는 고내바다 해녀처럼, 테왁은 달이 되기 위해 매일 밤 직선으로 투신을 감행하는 게다. 숨비소리를 가득 안은 그 힘으로 벼랑을 오르내리다보면 기어이 어둠을 비추는 달이 될지도 모르겠다. 할머니는 점점 멀어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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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어스름이 깔리고 사방에서 찰방찰방 바닷물이 차오르는 소리가 들렸다. 너덜겅을 지날 때였다. 눈 깜짝할 새에 할머니는 가뭇없이 사라지고 둥근 달이 낭떠러지를 오르고 있었다. 그 벼랑 끝에서 할머니의 테왁 속 시간들이 환한 숨꽃으로 피어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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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왁; 해녀가 물질을 할 때, 가슴에 받쳐 몸이 뜨게 하는 공 모양의 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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