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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비 체험기/정호경

에세이향기 2023. 1. 7. 08:39

변비 체험기

 

정호경

 

30년 전이라면 아득한 옛날이다. 그때 뜻하지 않은 위암을 만나 위장을 송두리째 들어내 버렸다. 밥을 두어 숟갈 떠 넣고 나면 물 들어갈 자리가 없다. 이가 없으면 잇몸이 대신한다더니 역시 위장이 없으니 대장(大腸)이 대역을 하여 직장생활을 계속할 수 있었다. 그 당시의 내 체중은 50킬로가 커트라인이었으니 몸이 가벼워서 구두창이 닳지 않아 가정경제에 다소 도움이 되기는 했지만 그 고통과 불편은 말이 아니었다.

내가 여자였다면 그런 다행이 없었겠지만, 그 당시 나에게는 날씬함보다 목숨이 걸려있는 심각한 상황이었다. 음식물을 소화 시킬 위장이 없고 보니 걸핏하면 설사를 만나 활동이 조심스로웠다. 나는 '양띠'라서 원래 물을 경계했지만, 밥이 많이 들어가야 체력을 유지할 수 있었기 때문에 국물을 삼가는, 밥 위주의 식사로 끝내고 있었다. 이렇게 하여 간신히 한평생의 교편생활을 마치고 집에 들어앉아 있으니 몸도 마음도 편안하여 살 것 같았다.

그런데 2,3년 전부터는 배변(排便)이 순조롭지 않아 2,3일을 거르기도 하고 심한 경우에는 5,6일 동안을 끌고 가기도 했다. 설사를 막기 위해 물을 절제해서 이런 병통이 생겼나 싶어 급한 마음으로 억지 물을 하마처럼 마시기도 했으나 배만 불러 오를 뿐 막힌 둑은 좀체 터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변비약을 사서 먹었지만 1주일이 되도록 별다른 소식이 없어 가까운 병원으로 달려갔다. 급한 사연을 말했더니 가루약을 한 봉지 주면서 지금 바로 먹는 즉시 화장실에 가서 앉아 있으라는 의사의 지시였다.

폭포처럼 쏟아져 내릴 장관을 상상하며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참고 조심스레 쪼그려 앉았다. 그러나 의사의 진단도 소용없이 변기에 앉아 있는 엉덩이가 욱신거리기 시작하면서 숨이 차오르고 이마에서는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참다못한 나는 바로 문을 열고 기어 나와 의사 선생에게 죽는 시늉을 했더니 얼른 큰 병원으로 가라면서 나를 밀어내 버렸다. 시골의 골목 전세 건물 2층에 있는 조그마한 의원은 참 무책임하고 편리했다. 하다가 안 되는 급한 환자는 '큰 병원으로'라는 한 마디면 끝이 났다. 택시를 잡아타고 큰 병원으로 가는 그 20여 분 동안은 옆에 초조하게 앉아 있는 아내에게 유언이라도 남기고 싶은 숨 가쁜 저승길이었다.

큰 병원에 도착하는 길로 곧장 접수처도 거치지 않고 내과 의사를 찾았더니 진찰 수속을 밟고 오라는 것이었다. 몇 분 후에 만나게 된 이곳 담당 의사도 아까와 꼭 같은 가루약 한 봉지의 지시였다. 화장실에 앉은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반쯤 죽은 창백한 얼굴로 의사 선생에게 다시 찾아가서 방법이 없느냐고 애원을 했더니 그는 얄미운 미소로 나를 무시해버렸다. 그러나 의사 선생도 나와 함께 당황하는 표정이 아닌 데서 나는 금방 숨이 넘어가면서도 은근히 안도했다. 아내도 옆에서 비실비실 웃고 있었다. 잠시 후에 응급실로 간다는 것이었다.

지금 나의 이 다급한 사태는 내과 의사의 책임 분야가 아니라 젊은 조수의 특별한 기술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잠시 후 나는 아내의 말대로 응급실 한쪽 구석 우중충한 커튼이 가려져 있는 침대에 눕게 되었다. 간호사는 두루마리 화장지를 네 통이나 준비하고 옆에서 있었다. 잠시 후 하얀 가운도 입지 않은 작업복 차림의 젊은이가 바쁜 걸음으로 들어오더니 팬티를 아래로 내리라는 말이 떨어지자 고무장갑을 낀 그의 무딘 손가락이 나의 항문 속으로 헤집고 들어왔다. 약으로 해결되지 않는 변비의 경우 21세기 현대의술 중 가장 야만적이면서 통쾌한 치료 방법이 바로 이것이었다.

이런 경우 흔히들 막혔던 항문에서 오물이 폭포수로 터져 나올 것을 대비해 화장지를 몇 통씩이나 준비해 놓는다고 했지만, 나의 경우 곱고 부드러운 황갈색 반죽이 방앗간의 떡가래처럼 한참을 소리 없이 밀고 나오더라는 것이다. 나는 누워 있어서 볼 수 없었지만, 지속적인 힘씀으로 하나의 완성된 예술품이 빚어졌음을 나의 예민한 항문 감각으로 느껴 알 수 있었다. 말끔히 일을 끝낸 냐는 그대로 침대에 누워 옥동자를 분만한 임산부의 흐뭇함으로 휴식을 취하고 있었는데, 담당 간호사는 신비에 찬 목소리로 누구에겐가 전화로 경과보고를 하고 있었다.

"1미터야, 1미터, 이렇게 고운 반죽의 장타(長打)는 처음이야!"

나는 못 들은 체하고 돌아누워 그 야만적인 의술에 감탄하고 있었다.

고역을 치르고 집으로 돌아온 나는 두 번 다시 이런 사건을 되풀이 하지 앟도록 하기 위해 무척 신경을 썼다. 그런데도 1년이 지난 뒤에 또 뒤가 편하지 않고 무거워지기 시작했다. 나는 비상약 상자에 준비해 둔 변비약을 얼른 찾아 먹었다. 그러고는 안심하고 서울에서 피서 온 아이들과 함께 바로 앞에 보이는 선창가로 산책을 하고 돌아오는데 갑자기 뱃속이 들끓기 시작했다. 사태가 예사롭지 않음을 직감한 나는 당장 집을 향해 뛰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집을 바로 눈앞에 둔 길옆 잡초밭에 들어가 쪼그려 앉았다. 동시에 폭포수가 쏟아져 내렸다. 지난번의 고생을 생각하고 변비약 두 봉지를 한꺼번에 털어 넣은 것이 탈이었을까, 길을 지나가는 사람들은 이 밤중에 왠 늙은 개가 잡초밭에 앉아 있나 싶었는지 힐끗하더니 그냥 지나가 버렸다. 대낮 같으면 아파트 바로 앞 길옆 잡초밭이니 어림없는 일이다. 이것이 작년 여름의 일이다. 금년 여름에 지나다가 무심코 그 잡초밭을 보니 작년의 그 몰염치했던 뒷자리에는 다른 곳에 비해 훨씬 생기 있고 윤기 나는 풀이 우거져 있었다. 얌전히 앉아 쏟아 놓은, 나의 순수한 자연산 퇴비 덕택인가.

나만 알고 있는 황성 옛터에 추억의 기념비라도 하나 세웠으면 싶었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내 늘그막 뜻밖의 별난 체험이 하도 처량하고 부끄러워 기억에서 사라지기 전에 몇 자 적어 후손에게 경계(警戒) 삼아 전하고자 이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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