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향기

문향이 넘나드는 선방입니다

2024/05/31 2

햇과부/ 한인자

햇과부/ 한인자 "햇과부, 어서 오셔.""??"황당한 호칭에 어쩔 줄 몰라 하는데 못 알아들은 줄 알고 거듭 말한다."햇과부, 어서 오시라고.""햇과부요?""그렇지. 너는 햇과부, 우리는 묵은과부."남편이 떠나고 중심을 잡지 못하고 있을 때, 가까운 두 선배가 맛있는 밥 먹자며 만나자고 했다. 약속 장소는 럭셔리한 고급 레스토랑이었다.​한껏 멋을 낸 선배들이 우아하게 소파에 앉아 있었다. 축 늘어져 들어오는 나를 반갑게 맞으며 큰소리로 해맑게 "햇과부'라고 불렀다. 선배들의 진정한 위로에 울컥했다.​다른 사람이 그렇게 부를까 겁나는 이름 '과부'를 두 선배는 거침없이 막 부른다. 그런데 이게 무슨 조화란 말인가. 나를 웃기겠다고 민망한 이름을 들석이며 고육지책을 쓰는 선배들의 작전에 말려들어 나도 모르게..

좋은 수필 2024.05.31

가난한 벽/ 전미란

가난한 벽/ 전미란 벽은 소리를 막아내지 못했다. 섬마을 학교사택은 여러 개의 방이 나란히 연결되어 있었다. 슬래브 지붕에 구멍 숭숭 뚫린 벽돌로 칸만 쳐져있었는데 칸칸이 나누어진 허름한 벽은 많은 말을 해주었다. ​소리는 밤이 깊을수록 커졌고 나는 예민해져갔다. 밤마다 부르릉 보일러 돌아가는 소리가 들렸다. 옆방 남자의 코 고는 소리, 기침소리, 방귀소리 할 것 없이 벽을 넘나들었다. 심지어는 몇 시에 일어나는지, 티브이 드라마는 뭘 보는지, 잠들기까지 무엇을 하는지 저절로 알게 되었다. ​사택은 보일러실을 부엌으로 썼다. 헐거운 문틈으로 들쥐가 드나들고, 비가 오면 지렁이들이 바닥을 기어 다녔다. 교실 헌 책상을 붙여 그릇을 올리고 빨간 고무통에 물을 받아 바가지로 떠서 설거지를 했다. 벌 받듯이 쪼..

좋은 수필 2024.05.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