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향기

문향이 넘나드는 선방입니다

2024/05/27 2

외딴집 / 조현미

외딴집 / 조현미  호박꽃 한 송이가 피어 있다. 그 집이 있던 자리에, 노을이 짙게 비낀 꽃은 붉다. 꼭 조등弔燈 같다.천생이 직립과는 먼 넝쿨에게 콘크리트 담벼락은 숙주가 되기엔 여러모로 옹색해 보인다. 어쩌다 수라修羅같은 콘크리트 틈새에 뿌리를 내렸을까. 갈지자로 굽은 그루가 영락없는 골절의 흔적인데 크낙한 잎사귀 사이 애호박을 조랑조랑 달고 있다.넝쿨의 여정 말미엔 넝쿨손이 바랑 하나 걸머메고 있다. 한 모금의 햇살과 바람, 한 치의 행로를 향한 저 가없는 탁발, 빈손이 못내 안쓰럽다. 사람에게나 짐승에게나 식물에게나 삶은 어차피 구도求道의 연장선상이 아니겠는가.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으나 늘 위태위태한 넝쿨의 처소를 보면 운명이란 신이 정해주는 것도 아니지 싶다.그 집을 처음 본 건 십여 년 전 ..

좋은 수필 2024.05.27

복어​/ 박은영

복어​/ 박은영        독종 소리를 들었다​   너 죽고 나 죽자 아무리 두들겨 맞아도 죽지 않았다   공처럼 가지고 놀다가 버려져도 꾹꾹 울음을 참고 몸뚱이를 굴러먹었다   왜 사니?   독한 말을 씹어 넘길 때면 헛배가 불렀다   슬픔을 가리는 위장술,   내성과 독성의 굴레에서 독한 년, 욕을 배불리 먹고 천하게 굴러다녔다   돌아서면 잊어버릴 만큼   나는 독기를 빼면 시체였다  투구꽃과 청산가리보다 한 수 위인 선대의 독 가哥들이 그랬듯   이를 악물고 살았다   살다 보니  그 많은 천적이 멸종되고 없었다

좋은 시 2024.05.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