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벚꽃 / 한경희 되돌아보면 할머니는 그때 할머니가 아니었다. 쉰을 갓 넘긴 아줌마였다. 열아홉에 엄마를 낳고 엄마가 스물셋에 나를 낳았으니 고작 마흔둘에 할머니가 되었다. 엄마는 처음부터 엄마였고 할머니는 처음부터 할머니라고 여겼던 어린 시절, 할머니에게도 맨발로 비 오는 거리를 첨벙거리던 때가 있었고, 좋아하는 동네 오빠를 보면 골목 모퉁이로 숨던 시절이 있었다는 걸 상상하지 못했다. 그날 그 자리가 아니었다면 나는 좀 더 늦게 그것을 깨달았을 것이다.손님이 뜸한 비 오는 날 오후가 되면 할머니의 모자점은 동네 사랑방이 되었다. 할머니는 설탕을 넣고 끓인 막걸리를 양은 주전자에 내오고 고추장떡을 지졌다. 알코올기가 날아간 그 막걸리를 '모주'라고 불렀다. 어른들 틈에 끼어 있었지만 나는 내가 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