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 / 김산옥 나는 순덕이 아줌마 발자국 소리를 들으며 자란다. 양구 대암산 깊은 계곡을 흐르는 두타연 일급수를 먹고, 부지런한 농부 발자국 소리를 들으며 키가 큰다. 때때로 찾아와 보듬어주는 넉넉한 순덕이 아줌마 사랑을 먹으면 한여름 불볕더위도 견딜 수 있다. 나는 대암산이 붉게 물들 즈음, 순덕이 아줌마 입꼬리가 귀에 걸리도록 통통하게 살이 오른다. 내 작은 몸은 땅의 온기와, 햇빛과 달빛, 산소와 비, 바람과 농부의 땀으로 완성된다. 온 우주가 담겨진다. 대암산 아래 넓은 벌판에 희끗희끗 서리꽃이 피면, 나는 순덕이 아줌마 곡간에 둥지를 튼다. 봄, 여름, 가을이 총총히 내 곁을 지나가는 동안, 나도 분주했다.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고 제때 열매 맺기 위해 숨 가쁘게 달려왔다. 이제 고단함을 내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