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어머니의 초상肖像
박경주
북극에 있는 버드나무는 살려달라고 기도하는 대신 얼음과 바람을 피해 바닥끝까지 다리를 뻗어 생명을 이어가지. 일 년 내내 비가 내려 봐야 겨우 콜라병 하나 정도 온다는 척박한 사막에 사는 소나무도 비를 좀 더 내려달라고 아우성치는 대신 최소한으로 먹고 마시게끔 자기 몸 구조를 되도록 단순화시킨대. 곰도 눈 쌓인 겨울동안 먹을 것을 달라고 기도하는 대신 미리 잔뜩 먹어두고 잠을 청하며 조용히 봄날을 기다리지. 목마른 나무가 가늘디가는 뿌리로 땅속 깊은 곳을 핥으며 물을 찾고 또 찾아서 겨우 목을 축이듯이 말이야.
기쁘고 뿌듯했다네. 서운하고 아쉬웠다네. 그렇게 며느리를 맞이했다네. 홀시어머니라서 더 조심스러웠고. 평판이 잘못 날까 두려웠다네. 조심조심. 내 일찍이 그렇게 조심스럽게 산 적은 없었다네. 신접살이 아들집과 우리 집 거리는 도보로 십 오 분 쯤. 우리 집에서 아들집 아니 며느리 집을 지나면 시장 앞 횡단보도, 거길 건너 다시 횡단보도 두 개를 지나면 돈암 성당이었지. 그날 성당의 주부미사가 끝나고 시장에 들리지 않았겠나. 생선을 사들고 횡단보도를 건너는데 갑자기 배가 아프기 시작했다네. 꾹 참고 집에까지 가기엔 역부족이었지. 아무리 둘러보아도 이 긴박한 상황을 해결할 만한 곳은 보이지 않았어. 거긴 주택가라서 마땅히 사정할 곳이 없었지. 아들의 아파트는 지척, 게다가 1층이라서 이 급박한 상황을 면하기 위해선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네. 아들집 현관 번호키를 누르고 입실하기 무섭게 화장실로 향하지 않았겠나. 화급한 상황을 모면하고 화장실을 나왔다네. 식탁에는 계란 프라이가 작은 접시에 놓여있었어. 저건 아마도 아들이 먹지 않은 것이리. 그 아인 계란 프라이를 좋아하지 않았거든. 출근시간에 쫓긴 아들과 며느리가 급하게 나간 상황이 그려지지 않았겠나. 접시를 비닐 랩으로 덮어둘까도 잠시 생각했지. ‘안 되지, 안돼.’ 내가 여기 들른 건 비밀이 아닌가. 나는 빠르게 현관문을 열었지. 아까 시장에서 산 생선봉지를 들고 말이야. 문을 열자 난데없이 비가 세차게 쏟아지고 있지 않았겠나. 무섭게 쏟아지는 거야. 빨리 나가야 하는데. 먹구름이 몰려오며 갑자기 날은 어두워지고 비는 사정없이 쏟아지고 있었어. 빨리 나가야하는데, 가야 하는데…. 들킬 것만 같은 불안감. 무심한 하늘은 더 세찬 비를 뿌리는 거야. 나를 혼내려고. 아들집 현관에는 우산들이 여러 개 꽂혀있었네. 저걸 쓰고 가면 되는데. 쓰고 가자니 내가 왔다간 것이 들통이 날 것이고, 쓰고 갔다가 다시 갖다 놓자니 우산이 젖은 까닭에 들통이 날 것이고. 자초지종을 말하기는 좀 거북한 일이었어. 몰라. 어쨌든 다녀간 흔적이 남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했어. 나는 그냥 비를 맞기로 했지. 용감히 나가 벌 쏘인 사람처럼 뛰었어. 옷 입고 샤워를 한 셈이라네. 여름인데도 추웠다네. 집으로 왔다네. 들키지 않고 잘 넘어갔다네. 킥킥.
아들이 자식이다요? 딸이 자식이지. 어떤 이는 이런 말도 하고, 호랑이보다 무서운 건 뭐게? 곶감이 아니라 며느리라는 우스갯소리도 가끔 듣곤 해. 어찌 며느리에게 큰소리를 쳐볼 수 있겠는가. 이제 쓸모없는 내가 나름의 생존방식을 깨치고 눈치를 보며 달라져야 하지 않겠나. 북극의 버드나무, 사막의 소나무, 겨울을 견디는 곰처럼 여건에 맞춰 나를 변화시켜나가야 해. 스스로를 돌보며 살아야해. 그래, 아들이란 키워서 보내는 거야. 성경에도 있잖아. 아들은 부모를 떠나 아내를 만나 한 몸을 이룬다고. 사십 여 년 전, 엄마가 내 혼수로 줄 너를 만지며 우셨어.
“딸은 가면 영원히 가는 것이여….”
자개장롱을 잘 만드는 장인에게 부탁해서 특별히 만든 너를 이삿짐 트럭에 실으며 엄마는 내 결혼을 아쉬워했지. 나는 낡은 가구들을 많이 버렸지만 엄마의 눈물이 밴 너와는 늘 함께였지. 엄마에게 너는 곧 나였고, 나에게 너는 곧 엄마야.
아들은 결혼하면 영원히 떠나는 것 같아. 다가올 작은 아들의 결혼식 식순을 새롭게 짤 순 없을까. 친정아버지가 신부의 손을 잡고 입장하던 기존의 결혼식은 현실의 세태와는 거리감이 있어. 신랑의 손을 꼭 잡고 입장한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아들의 손을 넘겨주는 것 어때?
“부디 잘 부탁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