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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깡통/구자호

에세이향기 2023. 6. 24. 07:45

빈 깡통 

 

                                                                                                                               구자호

 

 유난히 추운 겨울이었다. 허름한 입성으로 살을 에는 손돌이 추위를 견디는 일은 배고픔만큼이나 처절했다. 일곱 살 아이에게 살기 위해 먹어야 한다는 진리를 깨달아가는 일이란 참으로 아름찬 일이었다.

 

 두 팔을 뻗어 깡통을 내민다. 아낙네가 주는 밥은 깡통으로 들어가지 않고 땅으로 떨어져 버렸다. 곱아 어눌해진 손이 때를 제대로 맞추지 못해 숟가락으로 떠준 밥 한 덩이를 놓치고 만 것이다.

 "주는 밥도 못 받노! 가거라!"

 밥 대신 아낙네가 던진 매몰찬 말 한마디가 어린 가슴에 푸른 멍이 들게 했다.

 

 내 인생은 너무 일찍 빈 깡통이 되었다. 지독히도 가난했던 어린 시절 나는 깡통을 들고 거리를 배회해야 했다. 채워지기보다 비어 있던 적이 훨씬​ 많았던 깡통은 먹어야 살 수 있다는 서글픈 현실을 온몸으로 가르쳐 주었다. 빈 깡통이 내지르는 소리는 내게 가난과 고통과 절망을 알리는 나팔 소리였던 셈이다.

 

 내가 분신처럼 끼고 다닌 깡통은 철사로 된 팔걸이가 길게 달려 있었고 뚜껑이 없었다. 비가 오는 날이면 깡통 속은 물 범벅이 돼버렸지만 그나마 뚜껑 없는 깡통 덕분에 굶지 않고 어린 시절을 보냈다.

 

 빈 깡통은 절망의 소리를 내지만 꽉 찬 깡통은 배가 불러 좋다. 깡통이 배가 부르면 나도 배가 부르다. 오로지 생존을 위한 밥그릇이었던 깡통은 배고픔의 서러움과 한 끼 양식의 소중함을 뼈저리게 느끼게 해준, 삶의 지침서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빈 깡통은 날카로운 소리를 낸다. 사람들은 화가 나면 줄곧 죄 없는 깡통을 발로 찬다. 속엣것을 다 내어주고 배고픔의 서러움에 젖어 있는 깡통은 무심한 발길에 차여 만신창이가 된다. 빈 깡통은 스트레스 해소용으로 그만이라고들 한다. 나는 아무리 화가 나도 빈 깡통을 차지 않는다. 아니, 찰 수가 없다. 빈 깡통이 바로 나 자신이던 시절을 아직도 뚜렷하게 기억하기 때문이다.

 

 "너희들이 지금은 이 떡을 얻어먹고 있지만 먼 훗날에 이 중에서 누가 대통령이 될지도 모른다. 그러니 용기를 잃지 말고 열심히 살아야 한다. 알겠지?"

 열 살 때였다. 묘사 떡을 나누어주던 한 신사가 코흘리개인 우리를 붙잡고 조근조근 일러주던 말이다. 태어나 처음으로 내일이라는 미지의 시간에 대한 청사진을 그려보던 순간이었다. 오늘 하루 굶지 않는 것이 한갓 실낱같은 희망이었던 시절, 신사의 말​은 내게 야망을 걸어주던 주문이었다. 나도 열심히 살면 대통령이 될 수 있다는 말을 굳게 믿었다. 돌아보면 신사는 그때 떡 한 조각을 준 게 아니라 비어 있던 내 깡통 속에 희망이라는, 아무리 먹어내도 없어지지 않는 양식 하나를 채워준 셈이었다.

 

 큰 형이 제대를 한 얼마 후 술에 찌든 아버지께서는 몸도 마음도 피폐해져 버려 결국 고된 삶을 내려놓으셨다. 가장이라는 무거운 짐을 유산처럼 물려받은 형은 다행히 고향에서 공무원이 되었다. 덕분에 오랜 타지 생활을 석양에 타는 놀에 태워버리고 그립던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열네 살이라는 늦은 나이에 처음으로 학교 문턱을 넘어 한글도 깨우치지 못한 채 5학년이 되었다. 드디어 일곱 해 동안 굶주린 배를 채워주었던 빈 깡통과 이별을 했다. 험난했던 내 인생의 전환점을 형이 마련해준 셈이다.

 

 늦은 만큼 악착같이 공부를 했다. 빈 깡통 소리도, 배고픔도 더 이상 대물림하지 않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했다. 그 와중에 늘 등대처럼 깜빡이며 나를 인도하던 것이 신사의 말 한마디였다.

 

 인고의 세월을 견디며 쉼 없이 달려왔다. 단맛 쓴맛을 가릴 여유도 없이 빈 깡통을 채웠다. 무無에서 유有를 만들어 내는 일이 그리 쉬운 일이던가. 수없이 차이고, 밟히고 넘어지면서도 어제와 다른 내일을 위해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났다. 배고픔의 서러움이라는 세상의 막다른 골목에 서본 내게는 공부가 제일 쉬웠다. 가방 대신 깡통을 들고, 학교 대신 남의 집 대문 앞을 기웃거렸던 시절에 대한 한풀이이듯 공부에 매달렸다.

 

 노력이 헛되지 않아 내 삶은 등나무 줄기처럼 죽죽 뻗어 나갔다. 결코 내 것이 될 수 없을 것이라 싶었던 것들이 내 이름표를 달고 안겨들었다. 번듯한 직장도, 가정도, 자식도 거느리게 되었다. 하고 싶은 일을 하고, 가고 싶은 곳을 갈 수 있는 여유도 생겼다. 나라는 빈 깡통이 어느덧 고봉밥처럼 수북하게 채워지는 듯했다. 서럽고 초라하던 시간을 깡그리 잊어버린 채 욕망이라는 세상의 가장 튼튼한 뚜껑으로 깡통을 닫아걸었다. 철커덕.

 

 정년을 몇 년 남겨두고 덜컥 병마에 발목이 잡혀버렸던 어느 해, 오래 잊고 지냈던 유년의 빈 깡통 소리를 다시 듣게 되었다. 비인두암 3기라는 의사의 판정은 내게 사형선고나 다름이 없었다. 내 살을 벌레처럼 갉아먹는 암세포는 코에서 목으로 그 세력을 넓혀갔다. 발병 부위가 너무 깊은 곳이라 수술을 할 수 없어 항암치료와 방사선 치료를 받았다.

 

 목의 침샘은 완전히 파괴되어버렸고, 코와 목에서 피가 뭉텅뭉텅 쏟아져 나올 때는 어떤 희망도 가질 수 없었다. 재발에 대한 공포감은 나를 절봉絶峯에 서게 했다. 수없이 생과 사의 경계를 넘나들며 보이지 않는 어떤 존재를 향해 끊임없이 기도를 했다. 밥도, 돈도, 지위도, 명예도 아닌 삶이라는 가장 원초적인 시간을 구걸하며 내 깡통은 어느 때보다도 처절한 소리로 울었다. 내 깡통은 휘몰아치는 비바람과 거친 파도를 견뎌내며 오직 의지의 노 하나로 망망대해를 건너왔다.

 

 

 결국 5년 만에 완치 판정을 받았다. 오로지 살아남았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세상 모두를 다 가진 듯 감사했다. 암은 그 옛날의 뚜껑 없는 깡통처럼 나의 많은 것을 비우게 하고 물러간 것이다. 돌아보면 깡통이 내는 소리가 바로 내 삶의 경보였다. 오늘도 빈 깡통과 더불어 걸어왔던 나의 역사를 읽으며 다른 이의 빈 깡통을 채워주는 삶이라는 소중한 길을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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