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피
이명길
공원 산책길, 갈바람이 선선하여 팔랑대는 이파리 사이로 드러난 하늘이 드높다. 단풍나무가 밀집한 곳에 오자 뒤쪽에는 초록색인데 앞쪽에는 선홍색이다. 태생에 따라 물이 드는 시기가 서로 다른 단풍나무들이 어울려 가을을 풍성하게 한다.
앞쪽에 심겨진 나무가 홍단풍 나무이다. 키가 작아 가지에 손이 닿는다. 손을 펼친 모양의 잎은 가을을 노래하듯 발갛게 물들어 마음마저 달뜨게 한다. 여기서는 이국 종의 거둠 역할을 하는지 야윈 줄기 끝에 잎이 몇 개 말랐다.
뒤쪽으로 심겨진 나무는 중국 단풍나무이다. 태생을 알리는 듯 이름표가 걸렸다. 삐죽한 키에 잔가지를 잔뜩 내고 잎이 오리발 모양새인데 볼 때마다 줄기의 거친 껍질을 벗는다. 한 겹만 벗으면 좋으련만 사철 내내 허물 벗는 듯하다. 몇 년 이 길을 오가며 보지만 단풍든 적도 없다. 수피가 유달라 눈길이 가는데 이름으로 구분해 두어 다문화가정을 보는 듯하다.
옆집 새댁은 베트남에서 왔다. 자신의 이모가 한국 남자와 결혼하여 한국살이가 부러웠단다. 아담한 키에 눈이 말똥거리고 목소리가 낭랑하여 십 대 소녀 같았다. 앳돼 보여 나이를 묻자 서툰 발음이 멋쩍어서인지 대답 대신 함박웃음을 보였다.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칠 때는 술에 취해서도 인사를 잘했다. 언젠가는 킬힐을 손에 들고 남편 등에 업혀 온 적도 있다. 하지만 차를 마시러 오라는 내 말에 대답만 흔쾌히 하고 한 번도 벨을 누른 적이 없다.
무엇이 그녀를 힘들게 할까. 엘리베이터에서 모국어로 속사포를 던질 때면 그녀 얼굴이 울그락불그락했다. 더구나 술 힘으로 울분을 터트리는지 다른 사람 시선 따윈 아랑곳하지 않았다. 얼마나 속이 답답하면 엘리베이터 안에서도 울화를 참지 못했을까. 그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닌 듯 남편은 아내의 행동을 무심하게 바라볼 뿐이었다.
남편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힘들긴 마찬가지다. 의사가 통해도 나라의 문화가 장벽이 될 수 있다. 한 나라에도 지역적으로 문화가 다르고, 집안 풍습이 달라 서로 극복해야 할 문제가 된다. 단단히 각오하고 가정을 이루어도 온전하게 이해하고 실천하기가 쉽지 않다. 같은 태생끼리도 그러한데 이국인끼리 이루어가는 삶이라면 더하지 않겠는가.
다문화 가정 중에는 자신이 꿈꾼 것을 이루지 못해 자기 나라로 돌아가는 이국인도 있다. 물론 이국인 아내가 섣불리 판단한 경향도 있겠으나 한국인 남편의 문제점도 노출된다. 결혼이 거룩하고 성스러운 약속이어야 하는데 가족의 희생양으로 시집온 예도 있다. 사랑이 존재하지 않은 상태에서 목적만 갖고 이룬 가정이라면 더 많은 시련을 겪는다.
어딜 가나 여러 나라 사람이 섞여 산다. 한국도 단일 민족이란 말이 사라졌다. 이곳이 좋아서 살든, 먹고 살기 위해 정착했든 익숙한 품이 그립기는 마찬가지다. 그러기에 저마다 외로움에 몸부림치며 산다. 더러 다문화라는 말조차 거북해하는 이국인도 있다. 이 땅에서 더불어 생각하고 함께 사회에 이바지하는데 굳이 '다문화'라는 말로 구분 짓느냐며 피부색이나 언어로 인종을 나누는 것을 받아들이기 힘들어한다.
인근 마을에 다문화 가정이 모여 있다. 오래전부터 터를 잡아 마을을 이루었다. 식당이 여럿 있으나 거기 거주하는 이국인이 경영한다. 메뉴판에는 각자 나라말이 우선이다. 한글 표기도 하지만 우리말을 그다지 필요로 하지 않는다. 음식점을 경영하는 사람은 자기 나라 식자재를 들여와 고유의 입맛조차 유지한다. 이들이 애써서 자기 문화를 지켜나가는 것을 보면 이 땅에 뿌리내리려는 몸짓처럼 여겨진다. 두고 온 핏줄이 그리운 것도 당연하니 모여 산다고 이국의 외로움이 없진 않을 것이다. 그런저런 아픔이 스스로 벗어야 하는 삶의 껍질이 아닐까.
옆집 여자도 삶에 발버둥을 하느라 술에 취했는지도 모른다. 남의 이목을 무시하고 화를 뿜어낸 것도 이 땅에 뿌리내리려 아우성치는 것인지도. 단풍이 자연현상이듯 삶도 적절한 시기라야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다. 그 시기는 기다린다고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어떤 삶이든 부단한 노력이 따라야 하는데 이모의 삶만 부러워하던 그녀가 쉬이 단풍을 기대하는지도 알 수 없다.
우리말이 서툰 그녀가 또 울분을 터트린다. 이른 저녁 시간이건만 모국어로 커진 목소리가 내 집까지 넘나든다. 운동을 나가다 보니 남자는 복도 창으로 담배 연기를 날린다. 스스로 껍질을 벗는 아내를 지켜보는 일이 힘겨운지 어깨가 축 처졌다.
제 살을 벗긴다는 건 혹독함이다. 배롱나무, 산수유나무, 물박달나무 등도 그런 고통을 이겨내어 꽃이 피고 품을 키운다. 맨살로 맞는 햇볕이 더 따가울 텐데 옆집 여자는 몇 겹을 더 벗어야 고운 물이 들까. 아내를 지켜보며 기다려주는 남자도 그에 못지않은 고통을 겪으리라. 함께 물들어가는 삶의 단풍이 그래서 더 아름다운 것이거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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