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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수필

식은 죽/강표성

에세이향기 2023. 6. 24. 11:25

식은 죽

                                                                      

                                                                                                                             강표성

 

 

그 집 앞에 멈추었다, 습관처럼.

 

죽집은 여전했다. 주렴을 밀치니 작은 식당 안은 사람들로 복작거렸다. 겨우 엉덩이를 걸치고 앉아 주위를 둘러본다. 앞자리의 할머니 둘이 미장원의 파마 수건을 뒤집어쓴 채 식사에 열중이다. 이웃과 머리 단장하러 온 김에, 형님 아우 하며 점심을 나누는 중이다. 문 옆의 할아버지는 말없이 할머니 콧등의 땀을 닦아준다. 모처럼의 외출에 지팡이 임자는 숨을 몰아쉬고 있다.

 

“아들, 여기 겉절이 더.”

 

마치 자기 아들을 부르듯, 생김치를 재청하는 아주머니에게 기다렸다는 듯이 챙겨주는 젊은이다. 부모는 주방에서, 아들은 식당에서 손발이 척척 맞는다. 싹싹한 청년이 나르는 단 맛에 취해 잠시 그 옛날로 돌아간다.

 

어린 시절, 동지 무렵이면 신이 났다. 밖에서 뛰어놀다가 출출한 배로 돌아오면 자배기 가득히 팥죽이 담겨 있었다. 보는 것만으로도 배가 불렀다. 달고, 부드럽고, 찰진 그 맛은 여느 맛과 비교할 수 없었다. 아무리 속상한 일이 있어도 팥죽을 보면 마음이 동글동글해졌다.

 

추위로 곱은 손을 아궁이 불에 쬐면서 들녘에서의 일을 엄마에게 하소연했다. 그날도 연날리기가 문제였다. 정성스레 만든 연이, 그것도 비싼 창호지로 만든 것이 하늘가를 뱅글뱅글 돌다가 땅바닥에 처박힐 때면 내 마음도 곤두박질치는 듯 했다. 연을 높이 날리기 위해서는 연실을 풀고 당기는 일을 잘해야 하는데 그게 쉽지 않았다. 찢어진 연과 함께 집으로 오면 엄마는 팥죽그릇을 내밀었다. 뭉근한 불 위에 양은그릇을 올려놓으면 굳었던 죽이 슬슬 풀어지기 시작하고, 얼음이 배겨있던 손에도 피가 돌아 손바닥이 근질거렸다. 수저로 새알심을 눌러보니 말캉했다. 내 마음에도 금방 온기가 돌기 시작했다.

 

고향을 떠난 이후로 팥죽 맛을 잊고 지냈다. 은근한 맛보다는 빠른 단맛에 길들여졌다. 사는 일에 동동거릴수록 그랬다. 연 날리기 대신 삶의 현장에서 더 높이 더 멀리 올려야 될 일들이 많았다. 조금만 더 버티면 창공으로 날아갈 수 있을 것 같은데 발은 제자리였다. 목을 빼고 하늘을 바라보기 일쑤였다. 그럴 때면 자극적인 맛이 당겼다. 생의 최면제처럼 반짝, 기분을 올려주는 즉각적인 단 맛에 길들여졌다.

 

엄마는 기력이 떨어지면서 팥죽을 찾으셨다. 소태처럼 쓰디 쓴 입맛을 단맛으로 채우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바쁘다는 핑계로, 나는 직접 새알심을 빚고 팥국물을 거르는 대신에 동네 죽집을 들락거렸다. 밀린 숙제하듯, 죽을 내려놓는 알량한 배달부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는 딸자식 얼굴을 처음 본 것처럼 참 반가워하셨다. 팥죽 한 그릇을 앞에 두고 먼 추억 여행을 떠나셨다. 여름이면 팥물에 칼국수를 넣어 낭하를 해먹고 겨울이면 동지 팥죽을 쒀서 위 아랫집으로 돌렸다는 이야기, 동네에 초상이라도 나면 팥죽을 한 동이씩 끓여서 부주했던 이야기가 이어졌다. 팥죽보다 더 가라앉았던 시절도 딸려 나왔다. 딸을 줄줄이 사탕으로 낳고 시어른 눈치 보던 일들, 학자풍의 아버지를 만나 늘 허덕여야 했던 일상, 생인손처럼 가슴 아리게 하던 자식들, 엄마의 이야기는 끝이 없었다.

  

나는 시계를 보기 바빴다. 다음에, 여유가 생기면 마음 편하게 엄마와 시간을 보내리라. 우선 내 앞의 짐을 정리해야지, 그게 정답이라고. 자문자답하며 속으로 궁리했다. 그러나 엄마의 시계는 절대적인 시간 속으로 달려가기 바빴다. 신이 허락한 시간의 눈금이 얼마 남지 않았던 것이다. 밤낮 가리지 않고 전화를 걸어올 때 눈치 챘어야 했다. ‘그냥’이라는 엄마의 대답은 절제된 말줄임표였을 뿐이다. 자식들에게 폐가 될까봐 혼자 삭이던 엄마였다. 무주구천동에서의 마지막 휴가, 수술 그리고 병원, 이런 수순을 지켜보면서 설마 하는 심정이었다. ‘백세 인생’이라는 말로 나를 달래기조차 했다. 어쩌면, 현실을 인정하기가 두려웠는지도 모른다. 연말은 다가오고, 일거리는 쌓여있고, 그것에만 마음이 기울어 있었으니까.

 

그때는 왜 생각이 미치지 못했는지. 엄마가 기다린 것은 죽이 아니라 딸의 얼굴이었음을, 그것이 당신에게는 유일한 단맛이었음을. 죽음의 그림자 앞에서 한없이 외롭고 쓸쓸했을 엄마의 심정을 헤아리지 못했다. 가파르고 기우뚱한 그 시간이 신이 내게 허락한 엄마와의 마지막 단 맛이었음을 그 때는 알아차리지 못했다.

 

물끄러미, 내 앞의 팥죽을 바라보는데 죽집 아들이 작은 공기를 디밀었다. 그는 나를 기억하고 있나 보다. 가끔 팥죽을 사가던 한 여자를. 처음에는 두 그릇을 사가다가 한 그릇으로 줄더니, 최근에는 주먹만 한 공기 하나를 챙겨가는 중년의 여자를 잊지 않고 있었나 보다.

 

일어서는 내게 죽집 아들이 비닐주머니를 내민다. 쉬 식지 말라고 재차 포장한 죽 공기를 한참 바라본다. 아무 말도 할 수 없다. 그가 싸준 비닐봉지를 안고 밖으로 나올 수밖에. 죽이 식기 전에 가야 하는데, 나는 갈 데가 없다. 한 시간 넘게 차를 달려 왔지만, 여기서 길이 끊겼다. 엄마는 이 세상에 계시지 않는다.

 

인파로 가득한 시장이 휑하다. 나는 길을 잃은 아이처럼 우두커니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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