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반고등어 / 조현숙
갈바람에 가랑잎들이 나무를 떠난다. 그 자리에 발덧 난 햇살이 내려앉는다. 늘비한 국수 난전에서 끓어오르는 육수 냄새가 시장통에 목을 매고 사는 삶들을 둥실한 온기로 채우고 있다. 여기쯤일까? 아들 혼사 때 입을 한복을 맞추러 나선 길에는 가을을 먹는 사람들, 가을을 사고파는 사람들이 북적대고 있다.
무릎에 염증을 달고 사는 남편이 시장 어귀 가로수 아래서 숨을 고른다. 힘차게 헤엄치던 푸른 바다의 시절을 저만치 밀어 놓고 누런 잎사귀들, 후두두 떨어지는 길에 우리 같이 서 있다. 노량으로 걸었어도 이만큼 오느라 가쁜 숨을 내쉬는 발밑에서 낙엽들이 부스럭 몸을 일으킨다. 작은 새 떼들이 가랑잎 파들거리며 떠는 나뭇가지 안에서 소란스럽다.
나란히 걷던 남편이 나를 앞세운다. 와그작대는 시장통에서 행여 다른 이의 통로를 막을까 걱정하는 마음이다. 그걸 알기에 잰걸음으로 가서 기다리고 있는데 한복집으로 올라가는 상가 계단 아래 생선 좌판이 보인다. 생뚱맞기도 하다. 그나마 자반고등어, 갈치, 반건조 가자미 등속으로 구색을 맞추고 있다. 좌판을 펼친 할머니는 단단한 앉음매가 세월을 부려 깔고 있는성싶게 강단져 보인다. “사 가소. 제자리 간이라 맛있네.” 내 시선을 느꼈을까. 할머니가 자반고등어를 가리키며 말한다. 잡은 자리에서 바로 소금으로 간을 치는 고등어를 제자리 간이라고 한단다.
하늘색 납작 바구니에 큰 고등어와 작은 고등어가 한 손이 되어 얌전하게 포개져 있다. 바다의 기억을 잃은 고등어 눈이 인공눈물을 달고 사는 남편의 눈과 닮아있다. 볼일 보고 오는 길에 사겠다고 하자 할머니의 굵은 주름살이 웃음살로 바뀐다. 흘러내린 은빛 머리카락 위로 햇살 한 줌이 반짝거린다.
자반고등어의 시간은 어디서부터 시작됐을까. 상가 계단을 오르는 나는 바닷물에 발을 내딛는 듯 기우뚱거린다. 남편이 재바르게 잡아주면서 안과 좀 제때 가라고 구시렁거린다. 바다와 산간의 차이만큼이나 다른 환경에서 나고 자란 남편과 나, 세상살이 짜고 쓴 소금을 만나 깃들고 길들이면서 이제는 말간 웃음으로 서로를 품어줄 만큼 이력을 쌓았을까.
고등어잡이 배들이 바다를 가른다. 때를 가늠해 재빨리 둘러친 그물을 끌어 올려 벼리를 당기면 한바탕 와르르 쏟아지는 고등어들, 쉬지 않고 튀어 오르고 펄떡거린다. 함께 태평양 바다를 누볐던 눈부신 생들은 곧장 얼음창고로 던져졌다가 항구에 닿으면 등급이 매겨지고 흩어져 소금에 재워지거나 생물로 떠난다.
한 시절, 고등어는 바다를 본 적도 없고 바다로 가지 못했던 사람들에게 푸른 바다를 보여주느라 떼 지어 산등성이를 넘기도 했다. 동해를 떠난 고등어 떼는 소달구지나 등짐에 실려 험준 산길, 구불구불한 수렛길을 넘어 뜸 마을 어디쯤에서 한밤을 지새웠다. 바다 떠난 서러운 달빛이 꾸덕꾸덕 마를 때쯤 간잽이들은 칼을 들어 고등어 배를 가르고 붉은 속살에 왕소금을 쳐서 빳빳하던 결기를 가라앉히고 꿈을 잠재웠다.
분기탱천한 푸름을 내려놓고 조금씩 바래는 법을 배웠다. 바다가 제 몸을 졸여 만든, 단단하고 짜디짜고 반듯한 말씀을 품에 새겨 낯선 길에서도 시들부들 마르지 않고 어엿한 자태로 거듭날 줄도 알게 되었다. 치솟고 펄떡이는 것들이 삶의 소금기에 부들부들해진다고 순응이라고만 할까. 타협이라고만 할까. 미망에, 유혹에 빠져 부패하지 말라고 자신을 담금질해 온 방식이다. 숙성의 시간이고 거듭난 새로움이다.
불의한 것에 각을 세우고 찬란한 꿈을 품었던 시절이 가장의 무게에, 덜미 잡힌 생에, 부모의 이름으로 깨지고 고꾸라져 처박히던 시간도 있었다. 그때마다 고등어 두 마리는 한 손으로 부둥켜안고 시퍼런 바다의 수심이 얼마인지, 허방이 어디인지, 느닷없는 파랑은 또 언제 닥칠지 가늠하고 싸우느라 푸른 등에 물결무늬 상처를 만들기도 했다. 생존의 길 위에서 방향과 지향과 의지를 잃지 않으려고 검푸른 지표를 새긴 적도 있다.
비린 것을 좋아하는 그와 비린 것을 목에 넘기면 두드러기가 나던 내가 서로 품어 만든 푸른 생. 촉촉하길 바랐지만, 가슬가슬하고 푸석거리는 날이 더 많았다. 서로에게 성실했지만, 마냥 따듯하기만 한 건 아니었다. 서로의 염장을 질러 한숨과 분노가 허연 더께처럼 앉았던 시간인들 없었을까. 그래도 우리의 서사를 만들며 여기까지 왔다. 끝내는, 기꺼이 서로에게 염장이 되어주면서 다독이며 살아온 생이다. 지난하고 각다분한 삶이라고 짜고 쓴 곡절만 있었던 것도 아니다. 밍밍하고 싱거운 삶에는 짭조름함을 더하고 쓰디쓴 시간에는 달고 고소한 맛도 더하면서, 귀한 대접 받는 생선이 아니기에 더 애틋하게 온기를 주며 함께 걸어왔다. 고달픈 재 넘어 한고비 넘기면 또 다른 고비가 놓이는 게 인생길이지만, 훌쩍 커버린 자식의 독립을 앞두고 있으니 이만하면 여기까지 무사하지 않은가.
지금 선 자리가 우리 생의 어디쯤 될지 알 수 없지만 비틀거리거나 뒤뚱거려도 한 몸이 되어 나머지 서사도 엮어갈 것이다. 간이 쳐지면 어떠리. 생물이어도, 간고등어여도 그 누구의 밥상에서 일용할 양식이 되어줄 것을. 그와 나, 우리 얼싸안은 생 또한 세상살이에 소박하게 스며들고 젖어가며 누군가에는 꼭 필요한 삶으로 이어지길 바란다. 어느 난전에 놓였다가 투박한 아비의 손에 들려가는 땟거리가 되어도 좋겠다.
거칠 것 없이 바다를 누볐던 고등어들은 지쳐 죽을 때까지 팔딱거리며 뛰어오르는 걸 멈추지 않는다. 그 자유의 속성을 버리고 비린내 배인 좌판에 한 생을 뉘었다. 기꺼이 자식들의 밥이 되고자 했던 아비, 어미도 한때는 뜨거운 자유였다는 걸, 시퍼런 신념이고 열망이었다는 걸, 이제 자식들도 그들의 길에서 알게 될 것이다. 짐승의 시간이, 폭풍의 바다가, 비린내 나는 눈물이 그들의 길을 완성해간다는 것을.
상가 건물 모서리에 걸려있던 노을이 색색으로 고운 저고리 빛깔들을 흘리고 있다. 그중에서 한 색을 골라 몸피를 재고 셈을 치르는 동안 먼저 한복집을 나갔던 남편이 좌판 앞에 앉았다가 까만 비닐봉지에 한 생을 담아 들고 염증이 끓어오르는 무릎을 일으킨다. “쪼그리고 앉지 좀 말라니까.” 기어이 하나 마나 한 잔소리를 뱉는다.
길은 끔찍하다고 누가 말했던가. 모든 생은 길 위에 놓여 있는 것을. 남편이 천천히, 땅을 다지듯 걸어간다. 햇덧이 내 발걸음을 보챈다. 바다를 차오르고 등 푸른 산을 발맘발맘 걸어온 고등어 두 마리가 파시의 길 위에서 벙긋 웃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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