땀 외 1편 정경해 손톱 세운 겨울바람 목을 휘감는 한신빌라 골목길 폐지 줍는 노인 등에 안개 자욱하다 저 굽은 능선에 그려지는 생의 지도枝道 밭은기침에 움푹움푹 길이 파이고 박스가 쌓일 때마다 새길이 자란다 무수한 시간을 누덕누덕 기운 오래된 등에 내일을 여는 하루가 다시 박인다 땀 줄기 깊어진 어깨에 가래처럼 달라붙은 납작한 삶이 모락모락 고개를 들고 질긴 숨줄, 한 땀 한 땀 하루를 깁는다 슬리퍼 욕실 슬리퍼 한 짝 화장실 문 닫을 때마다 빼꼼히 고개 내밀다가 번번이 한 소리 듣는다 목이 끼어 숨도 못 쉬면서 기어코 발꿈치를 붙든다 궁금한 게 뭐 그리 많냐고 윽박지르면 풀 죽어 구석에 엎드려 있다 깜깜한 화장실에 갇혀 오죽 바깥세상 그리웠을까 가벼운 몸을 들어 바로 눕히니 흠뻑 젖은 얼굴로 미안하다 웃는다 오로지 딸 걸음 소리만 기억하던 홀로된 치매 어머니 누워있다 감자 눈 정경해 감자껍질을 벗기다 싹이 돋은 감자 눈을 파낸다 귀찮은 듯 무심히 도려낸다 왠지 감자의 생각을 싹둑싹둑 자르는 것 같아 감자에게 미안하다 어두운 상자 안에서 얼마나 외로웠으면 이렇게 돋한 말을 남긴 걸까 문득, 감자를 보내주신 아버지를 떠올린다 하나 밖에 없는 딸이 궁금해 어쩌다 전화를 걸면 늘 바쁘다고 단번에 말을 자르는 딸 아버지는 매몰차게 잘린 말들을 보며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시골집 한구석 컴컴한 방에 누워 혼잣말로 밤을 지새운, 못다 한 그 말들이 암으로 자라난 걸까 설거지통에 뭉텅뭉텅 잘린 아버지의 말들이 감자 눈을 끌어안고 울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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