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무덤
마경덕
주소를 달고 누런 봉투에 그대로 갇힌 책
닫힌 책은 입이 사라지고
한 묶음의 침묵이 된다
냄비받침이나
기우뚱한 의자 다리에 깔려 죽어가거나
낱장으로 뜯겨 딱지가 되거나
끝내 고물상의 폐지가 되거나
한 번도 세상을 만나지 못한 시
그대로 잊히는 소설
종이의 뼈가 누렇게 휘어진
고서(古書)가 되도록 살아남을 수는 없을까
작가의 쓰라린 눈물이
밤새 펄펄 끓던 시인의 심장이 식어가는데,
갇힌 저 글자들은
언제 무덤을 열고 나오나
미친 듯이 책은 쏟아지고 쏟아진다
오늘도 무덤을 향해
[출처] 책 무덤 / 마경덕|작성자 마경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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