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운 오역
허림
오늘은 들어가지 말아 줬음 해
네 시 사 십 칠 분에 받은 문자
움직이는 말이 다섯 개씩이나 이어지는 문자
'줬음'이 맘을 잡네. 이유 없이
더군다나 들어가지 말라는 것도 아니고 말았으면도 아닌
말아 줬음 한다는, 그렇게 나는
이유 없이 망설이며 맘 설렌다
구름처럼 노을처럼 서로 애절하게 물드는
연봉다리를 건너갔다
남산다리를 건너오며
산마루에 걸린 저녁 해와
미끄러지면서도 얼음 위로 애절애절 올라서려는
흰뺨검둥오리를 바라보다
여섯 시 사 십 팔 분
오막에 들어 별 하나 띄운다
오늘은 오막에 들어와 줬음 해
그대도 오역하기를
―허림(1959~ )
'
오막'에 홀로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산촌입니다. 솔 그늘에 바람 소리가 가장 가까운 이웃입니다. 까닭이 있겠으나 무소유자입니다. 그림자마저도 가뜬합니다. 분홍빛의 읍내까지는 멉니다. 가끔 거기 적막을 가지고
나가서 팔고 옵니다. 가져온 적막이 너무 많을 때 '단골'은 그냥 보내기 아려서 문자를 보냈습니다. "오늘은 들어가지 말아 줬음 해." "미끄러지면서도 얼음 위로 애절애절 올라서려는/ 흰뺨검둥오리"의 저녁을 진심 안다고 하겠습니다. '설렘'과 '가슴 저림'의 중간 어디쯤에 별이 떴습니다. 다시 저문 '오두막'이니까요. 그 밤 어둠은 내내 새파랬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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