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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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수필

활/김은주

에세이향기 2021. 8. 23. 12:02

활 / 김은주

 말간 국물에 *졸 복이 몸을 뒤집고 누워있다.

 중심이던 머리를 버리고 배를 가르고 나니 온몸이 활처럼 휘었다. 딱 새끼 손가락만한 크기다. 콩나물과 미나리만 동동 떠 있는  국물에 등을 보이며 엎어져 있는 놈도 몇 있다. 졸 복은 목숨이 다 했음에도 불구하고 국물사이를 헤엄치고 있는 것 같다. 얇은 졸복 껍질이 뜨거운 국물을 만나 그 뜨거움을 견디지 못하고 오그라 들었다. 동그랗게 말린 껍질은 제 몸을 숨기고 반대쪽 살은 수축을 견디지 못해 훤히 제 속을 열었다. 성급하게 말린 껍질 때문에 살들이 하얗게 뒤집어진 것이다. 살과 껍질이 일심동체가 되지 못한 탓이다. 하얗게 뒤집힌 살들 사이로 잔가시들이 즐비하다. 봄이라 예민해진 나는 이 부드러운 뼈마저도 입안에서 거슬린다. 우선 껍질부터 벗겨 입안에 넣고 씹어 본다. 소름처럼 돋은 돌기들이 예민한 나의 감각을 깨운다. 젤라틴 성분의 쫄깃함은 그 다음에 느껴진다. 다시 국물을 맛본다. 일체의 양념을 배제한 국물에서는 콩나물, 미나리, 졸복, 이 세 가지 맛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다. 잡스런 맛이 거세된 졸복 국물이 빈 위장을 타고 내려가니 온 몸이 터질듯 부풀어 오른다.

 

 옆 테이블에 낯선 남자 둘이서 졸복과 도다리 쑥국을 놓고 저울질하고 있다. 주인장이 손 가는대로 휘 갈겨 쓴 "도다리 쑥국 개시"라는 종이 쪼가리를 올려다보더니 졸복에서 쑥국으로 기운다 검은 얼굴의 두 남자 입에서 쑥국이라는 단어가 무리지어 쏟아진다. 작업복 차림의 둔탁한 이 남자들 마음 안에도 봄은 찾아왔는지 금방 나온 쑥국에 머리를 박고 몸을 먹는다. 쌉쌀한 쑥 향이 테이블 넘어 내게까지 전해온다. 바다 냄새가 나는 파래무침을 더운밥에 올려 먹던 나는, 동백이 보고 싶어 그들에게 묻는다. 어딜 가면 동백을 만날 수 있느냐고. 분소식당 바로 앞 언덕배기 조각공원을 가리킨다.

 

 통영 서호시장을 빠져 나와 조각공원으로 오르니 활처럼 휜 통영 앞바다가 한 눈에 들어온다. 완만하게 굽은 포구에는 푸른 바닷물이 고여 있어 그런지 실루엣이 제법 팽팽하다. 첩첩 겹쳐 댄 배들이 봄 햇살에 졸고 동백은 아직 이르다. 겨울 가뭄에 목이 탄 동백은 꽃잎도 열지 못한 채 떨어져 누웠다. 몇 걸음 아쉬운 동백을 보며  걸음을 옮기는데 제법 탄력 있는 소리가 귓전에 날아든다.

 

 물이 오른 실버들을 감아다 내려 칠 때 나는 소리같이 "피웅"하는 단말의 음이다. 가만 들어보니 그 소리에 봄 물기가 흠뻑 배어난다. 소리를 따라 고개를 돌려보니 국궁장이다. 허공을 가르는 화살소리가 멀리 봄바다를 가로 질러 붉은 과녁으로 향하고 있다. 흰 바지저고리를 입고 남자 몇이 서서 활을 쏜다. 멀리 떨어진 과녁을 향해 팔을 뻗어 정지 된 상태로 호흡을 고르고 있다. 당긴 손, 눈 깜박임, 근육의 떨림, 들숨과 날숨이 일순 정지된 상태, 줌손은 태산을 밀듯 앞으로 버티고 시위를 당긴 깍지 손은 호랑이 꼬리 같이 펴라는 궁도의 수련법이 먼 거리에서도 오롯이 느껴지는 자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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