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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기 돌 / 김은주

에세이향기 2021. 8. 24. 05:32

웃기 돌 / 김은주 

 

 

 

 

끝물 김치 사이로 봄이 오고 있다.  

군둥내 나는 김칫독을 비우고 묵은 된장독도 작은 곳으로 옮겼다. 갖추 담아 놓은 장아찌 독도 함께 내다 놓는다. 두어 달 바람을 치게 한 후 오뉴월 풋것이 성해지면 그때 새롭게 장아찌를 담글 요량이다. 장아찌 독을 열자 맨 먼저 내 눈을 사로잡는 게 있다. 새까만 돌고래의 눈알 같은 웃기* 돌이다. 일 년 내도록 장물에 몸을 담그고 있어서 그런지 새까맣다 못해 햇살 받은 몸이 눈부시다. 들기름을 먹인 듯 반들거리는 웃기 돌은 처음 우리 집에 데리고 올 때의 모습과는 전혀 달라져 있다. 돌의 살갗이 한결 매끄럽고 고와진 것이다. 피안을 건너듯 어두운 장독 안에서 끝없이 부유하려는 내용물을 지그시 누르고 앉아 있었을 웃기 돌을 생각하니 고행 승려 못지않게 장해 보인다. 깜깜절벽이었을 그 공간에서 돌은 스스로 짠물에 간을 맞추며 매끄러워지는 법에 대해, 웅숭깊게 익어 가는 일에 대해 오래 생각했을 것이다.

 

우리네 삶도 마찬가지다. 떠오른다고 다 성공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적당한 선에서 자신을 가라앉힐 수 있는 내공이 있어야 더 크게 나아갈 수 있으리라. 가라앉음은 주저앉는 것이 아니라 낮아져 더 깊고 그윽하게 곰삭을 기회를 제공 받는 것이다. 턱없이 떠오르면 부패하기 십상이다. 숨을 쉬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것이 공기이기도 하지만 발효를 거칠 때는 공기와의 접촉이 산패의 원인이 될 수도 있다. 스스로 가라앉을 수 없을 때는 지그시 눌러 주는 웃기 돌이 꼭 필요하다. 돌의 무게와 내용물이 받을 하중 사이에서 장아찌는 비로소 맛있게 제 몸에 간장 물을 들이는 것이다. 짠물을 짙게 받아들이면 들일수록 장아찌는 더 맛있게 익어 간다. 내 주변에도 공기와 장물 사이를 견고하게 막아 사유의 부패를 막아 주는 그런 웃기 돌 같은 사람이 한 명 있다. 내가 감정의 진폭이 커서 끝없이 떠오를 때 매서운 말 한마디로 나를 지그시 눌러 주는 사람, 살막금의 K씨다.

 

그녀는 늘 말한다. 세상을 살면서 제 감정을 여과 없이 값싸게 방출하기 시작할 때 남들에게 보이는 삶은 이미 생명이 다한 것이라고. 몇 번이고 곱씹어 봐도 그녀의 말이 맞다 싶다. 이런 말을 수시로 화두 던지듯 하는 K씨는 장물에 잘 절여진 웃기 돌 같은 여자다. 가무잡잡한 얼굴 하며, 아이 같은 작은 키와 조막손, 신체적으로 뭐 하나 변변한 게 없다. 하나 시집을 두 권이나 낸 이력 하며, 한우 서른 마리와 동거를 하고 논농사와 토마토 농사를 팔자로 지을 때 보면 보여지지 않는 그녀의 내공이 단숨에 느껴진다. 흰 고무신을 즐겨 신어 우리를 유쾌하게 하고 요가 포즈로 물구나무를 서 있을 때 보면 잎 다 떨어뜨린 겨울 나무 같다.

 

올해 초 우리 집에서 모임을 가졌을 때 근 일 년 만의 모임이라 반색을 하며 이야기에 골몰할 때 그녀는 옆에 앉아 졸고 있었다. 지난밤 어미 소가 송아지를 낳았는데 밤새 보듬고 앉았다가 새벽 기차를 탔다는 거다.

 

소를 돌볼 때는 철저히 소 안으로 젖어드는 것, 그리고 당장 눈앞의 일에 자신을 온전히 쏟아 붓는 것, 이것이 K씨만의 살아 있는 삶의 방식이다. 그녀의 철학은 늘 소박한 가운데서도 큰 사유의 진폭을 가져 모든 낯선 것들을 스스로에게 젖어 들게끔 한다는 것이다. 저절로 녹아들어 스스로를 물들이고 그것이 제 몸과 한색깔이 되면 다시 저만의 색깔로 풀어내라는 것이다. 간장 독 안의 웃기 돌을 보는 듯 그녀의 이론은 늘 우리를 무릎 치게 한다. 나만의 독특한 색깔이 자기 자신에게는 가장 이로운 것이라는 이론이다. 독 안의 장아찌와 웃기 돌처럼 같이 부대끼는 것이야말로 서로에게 이물 없이 젖어드는 데는 그만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녀가 내민 선물은 까만 서리태 한 봉지다. 친구들 머릿수만큼 봉지를 만들어 와 앞앞이 한 봉지씩 나누어 주며 콩을 쥐고 씨앗의 숨소리를 느껴 보라고 한다. 한 움큼 콩을 쥐니 알알이 손바닥에 박혀 오는 뿌듯함이 있다. 쥐었던 손을 놓자 미끄러지듯 손바닥을 빠져나가는 콩들, 지난여름 K씨가 흘렸을 땀이 배어나는 것만 같다. 콩은 손바닥 안에서 금방이라도 싹을 틔울 듯 꿈틀거린다.

 

장물에 절여진 새까만 돌을 꺼내 흐르는 물에 씻어 볕 좋은 베란다에 널어 말린다. 그러고 나니 습기를 날린 돌의 표정이 한결 가벼워 보인다. 구부려 독을 씻다 말고 말라 가는 돌들에게 눈을 맞춰 본다. 흰 이를 드러낸 K씨가 거기 앉아 있는 듯하다. 내남천에서 데리고 온 돌인데 멀리 있는 그녀가 자꾸 생각나는 것은 왜일까. 지금 이 웃기 돌은 수석을 고르다 무늬나 색깔이 마땅치 않아 어설프게 밀려난 돌들이다. 하지만, 한쪽에 밀쳐져 있던 돌들도 웃기 돌로 쓰이며 아름답게 여물었다. 돌도 제자리를 찾아 오래 숙성되고 보니 그 자태가 더할 수 없이 고와졌다. 어찌 보이는 것만이 다 삶이라 할 수 있겠는가. 눈길이 벗어난 곳에서 스스로 익어 발효의 세상을 만난다면 그 또한 진배기인 것을……. 일 년 내도록 묵묵히 제 소임을 다한 웃기 돌이 햇살 아래 환히 웃고 있다. 

 

 

* 웃기 : 음식이나 떡 위에 볼품의 용도로 얹는 고명 따위. 어떤 내용물이든 그 위를 덮는 용도로 쓰이는 것이 '웃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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