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 / 박월수 |
한 줌 남은 가을도 저물었다. 집 없는 새들은 바람 자는 풀숲에 무더기로 깃들이고 좁은 골목 어귀에는 연탁 화덕을 놓고 둘러앉은 사람들이 살 오른 양미리를 굽고 있다. 이른 저녁부터 소주잔을 기울일 모양이다. 조락의 시기가 지나고 속이 그득한 열매를 거둬들인 지금은 성숙의 계절이다. 아니마와 아니무스를 동시에 소유하고 지배한다. 그 둘 모두를 내면에 품는다. 마음 구석구석 넉넉함과 여유로움이 배어난다.
풍족함이 넘쳐서 차라리 사무치게 외로워지는 날, 나는 낮은 첼로 음률이 가슴을 적시는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를 듣는다. 이은미의 목소리로 듣는 이 노래는 오래 들어도 질리지 않는다. 그녀의 목소리는 이 계절의 하늘빛을 닮았다. 아득하기도 하고, 막막한 입맞춤이 연상되기도 한다. 무대에 선 그녀의 맨발을 떠올리면 내 속에 숨었던 열정이 다시금 꿈틀거리며 기어 나올 채비를 하는 듯도 하다.
"누구나 사는 동안에 한번 잊지 못할 사랑을 만나고 잊지 못할 이별도 하지. 도무지 알 수 없는 한 가지 사람을 사랑한다는 그 일, 참 쓸쓸한 일인 것 같아…."
아프로디테의 생일 축하연에서 만난 풍요의 신 '포로스'와 결핍의 신 '페니아'는 사랑에 빠진다. 그들 사이에서 사랑의 신 '에로스'가 태어난다. 모자람과 넘침 사이에서 헤매는 중간자인 '에로스', 사랑이 쓸쓸할 수 밖에 없는 까닭을 알 것도 같다. 사랑을 하면 누구나 소유하고 싶어지고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상대의 영혼마저 구속하려 든다. 사랑의 기원을 기억한다면 쓸쓸함도 사랑임을 이해할 수 있겠다.
쉼 없이 피던 장미도 시들고 모든 연약한 것들은 더 이상 꽃 피우지 않는 계절이다. 절정으로 치닫다가 사그라진 적막한 산에는 군데군데 붉은 빛을 매 단 열매가 있다. 가시로 덮인 청미래덩굴 나무에 열리는 명감이다. 아맘때의 산이 켜놓은 등불 같다. 나는 해마다 봄이 되면 청미래덩굴 뿌리로 술을 담근다. 이 나무의 뿌리는 커다랗고 징그러운 곤충을 닮았다. 마치 살진 지네 같기도 하고 사막에서 만난 전갈 같기도 하다. 칙칙한 빛깔에 서로 부딪치면 투박한 소리가 난다. 만져보면 돌덩이처럼 딱딱하다. 열매와 뿌리는 이렇듯 다르지만 사람을 위로하는 방식은 닮았다.
이 계절의 어느 저녁 낮은 첼로 음을 배경으로 나는 무슨 의식 치르듯 청미래 술 단지를 개봉한다. 쓸쓸함이 깊을 땐 소통할 무언가가 그리워지는 법이다. 술은 맛으로 먹는 게 아니라 취하기 위해 마신다는 걸 이해하는 나이가 되었지만 나는 여전히 빛깔 때문에 마신다. 청미래덩굴 술 빛깔을 보고 있으면 붉은 빛이 지나쳐서 절로 눈물 난다. 사랑을 못 이루고 죽은 이의 혼이 나무의 뿌리에 가서 굳어버린 것 같다. 나는 술 빛깔을 그윽이 바라보며 쓸쓸함을 달랜다.
지네 혹은 전갈을 닮은 뿌리로 담근 술은 아이러니하게도 우리 몸 안의 독소를 밖으로 몰아낸다. 사랑 때문에 오래 아팠던 사람들도 이 술을 마시면 남은 상처가 모두 아물고 말 것 같은 착각이 든다. 한 해 동안 내 속에 쌓인 지독한 생각들도 모두 씻어내 주길 바라며 나는 또 다시 술을 따른다. 몽롱한 가운데 흉내 낼 수 없는 목소리의 가수가 노래를 하고 나지막이 첼로 소리 번진다.
핏빛으로 붉은 술을 마시며 나는 생각에 젖는다. 사랑을 하면서도 쓸쓸한 게 인생이라면 지금 사랑을 잃어버린 이들은 뼛속까지 고독할 것 같다. 이 계절이 어디에나 잿빛인 건 지나간 사랑을 추억하라고 신이 그렇게 만들어 놓은 건 아닌지 모르겠다. 이제 곧 손톱만큼 남은 해는 속절없이 지나버리고 말테니 더 늦기 전에 지상과 하늘의 경계가 모호한 잿빛 속에서 따뜻한 사랑을 찾아가라는 뜻으로 여겨진다. 그 사랑의 대상이 가족이든 연인이든 간에 말이다.
'좋은 수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무종(霧鐘) / 이지원 (0) | 2021.08.24 |
---|---|
웃기 돌 / 김은주 (0) | 2021.08.24 |
칠단/김은주 (0) | 2021.08.23 |
절구불佛 / 김은주 (0) | 2021.08.23 |
능 陵 / 김은주 (0) | 2021.08.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