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피볼락/황진숙
고동치는 심장으로 튀어 올라 허공을 후려칠 기세다. 날카롭게 세워진 등지느러미에 찔린 듯 아려온다. 부릅뜬 눈은 소멸한 시간을 타고 되돌아온 듯 생동감이 흘러넘친다. 육신은 사라졌지만 어탁이 되어 쏟아내는 어기찬 기운이 액자가 걸린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다. 두꺼운 입술과 부리부리한 눈망울의 우직한 영혼이 내 안을 들이민다.
조피볼락은 잘나지도 못나지도 않았다. 갈치의 은빛처럼 화려하거나 눈에 띄지도 않는다. 아귀나 물메기처럼 못생김의 끝판왕은 아니고 쑤기미와 삼세기보단 준수하다. 우럭 똥새기 우레기라 불리는 촌스러운 별칭이 생김새를 낮잡아 보이게까지 한다. 수박 향이 감도는 은어의 귀티나 가슴지느러미를 펼치고 날아오르는 날치의 영민함에 비해 내세울 게 없다. 닮은꼴로 통하는 꺽지가 수시로 변색을 하는 것과 달리 밑바닥의 색을 몸에 입혀 위장하는 신공도 물살을 가르는 질주 능력도 없다.
이도저도 아니라면 몸 어딘가에 강력한 한 방쯤은 장착하고 있어야 하지 않는가. 천적으로부터 방어할 이빨이나 독을 품은 독선 정도는 돼야 하지 않느냔 말이다. 그도 아니면 부레에서 소리를 만들어 적을 위협하는 호기라도 부려볼 만한데 조용하기만 하다.
밋밋하다고 해야 할지 초연하다고 해야 할지. 한세상 건너는데 별다를 게 없는 처세술이다. 겁 없이 휘젓고 다니던 치어의 시간, 적을 피하던 은둔의 시간, 종족 보존을 위한 환희의 시간을 나이테에 새기며 덤덤히 유영하는 조피볼락. 암초 지대에 터를 잡고 자기 자리에서 벗어나지 않기 위한 날들이었다. 수심이 깊은 바닥의 험한 암초와 가라앉은 폐선에서 은인자중하며 몸피를 불렸다. 무른 뼈와 살을 여물리기 위해선 찬물이 제격이었다. 무리 지어 바다의 무늬를 만들기도 하고 어둠 속에 갇힌 거친 시간을 돌기도 했다.
보이지 않는 여정을 마치고 뭍에 올라 남은 생을 보시하는 존재. 바다를 떠나왔다고 해서 제 세상을 향한 꿈까지 버린 것은 아니다. 낡은 어선에서 환한 어항에서 궁색한 좌판에서 해풍에 내몰린 비린 생을 풀어 놓는다. 어쩌다 낚싯바늘에 걸린 조피볼락은 한껏 입을 벌리고 등지느러미를 세운다. 뜰채에 오르는 순간부터 도마 위에 올라 숨이 떨어질 때까지 펄떡거린다. 온몸을 뒤흔들며 바닥을 친다. 더는 바다의 삶을 살 수 없어 거친 야성으로 몸부림친다. 세상 한 귀퉁이에서 검불처럼 스러질지언정 만신창이가 될 때까지 퍼덕이는 몸짓이 맹렬하다. 칼날 아래서조차 제 몸에 손대는 것을 거부하는 자유를 향한 결기가 비장하다.
살을 발라내고 남은 가시에서는 억센 힘이 느껴진다. 요동치는 풍랑을 나직하게 읽고 흘려보낸 굴곡진 시간이 뼈대를 타고 흐른다. 죽어서도 단단한 등뼈로 자기다움을 남겨놓은 치열함이 고스란하다. 가시에 남아 있는 한 호흡 한 호흡 생의 기억들에서 지느러미가 다시 돋쳐 오를 것만 같다. 못난이로 불리는 모과가 속은 썩어가면서 끝까지 향기를 내뿜는 것처럼 제 깜냥대로 존재의 실존을 증명하는 조피볼락이 통렬하다. 운명을 바꿀만 한 비범함은 가지고 있지 못해도 무던한 하루를 쌓았을 최선이 빛을 발한다. 치열했을 그의 하루가 아득하다.
사는 방식이 다른 저마다의 생이다. 독설과 개성이 눈길을 끄는 시대라지만 눈에 띄지 않는 거무튀튀한 몸빛으로 자신을 던져 삶을 일갈하는 그의 몸짓이 숭고하다. 온몸이 귀가 되고 눈이 되어 전방을 주시하며 소리 없이 기운을 결집하는 존재. 머리를 치켜들고 흐르는 물살을 버티며 세상을 살피는 존재. 주어진 시간이 소진될 때까지 혼신을 다해 살아있음의 발성을 멈추지 않는 생의 기척이 묵직하다. 제 몸 하나로 바닷 속 길을 뚫었을 역동성이 탁본 된 액자 속에서 살아 숨 쉰다. 먹물로도 감출 수 없는 눈부신 비상이 내 가슴에 날아와 박힌다.
그냥저냥 살아온 날들이었다. 바람이 불면 부는 대로 햇살이 비치면 비쳐드는 대로 몸을 맡기면 그만이었다. 시들지 않는 조화처럼 생기나 향기 하나 없이 겉치레로만 살아왔다. 몰입할 만한 열정도 뚜렷한 의지도 품지 못했으니 건조한 일상이었다. 숨이 차도록 내달려 본 적 없는 느림보 걸음이었다. 스스로 길을 만들지 못하고 내 앞에 꽃길이 펼쳐지길 기대한 제자리 인생이었다. 다부지게 살아내지 못한 시간이 무겁게 달라붙는다.
깊어지고 가벼워져 심연에 도달하는 조피볼락처럼, 한 곳에 머물며 솟구쳐 오를 수 있을까. 가라앉지도 튀어 오르지도 못해 파닥거리지나 않을는지. 거무스름한 그림자가 아슴푸레하게 번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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