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 자리를 앉히며 / 김선화
8년 전, 도시생활에 권태를 느낀 나는 산마을 이곳저곳을 돌며 구옥을 구경했다. 빈 집을 꼼꼼히 돌아보며 세월의 흔적을 이고 서 있는 돌담에 매료되곤 했다. 섬세하지 않아 더러는 무너져 내린 곳도 있었지만 그러한 곳은 고쳐 쌓으면 될 일이라 여겨 크게 문제 삼지 않았다.
그러던 중에 친정어머니는 줄곧, 산마을보다는 평지의 친정집을 수리해 살라고 이 딸을 꾀어냈다. 뒤꼍은 산에 닿았고 대문 밖은 소로인데 길 아래로는 무논이 이어져 벼 익는 모습도 한 눈에 들어오는 마을초입이다. 대식구가 살다 나와 비어있는 구옥 토방엔 고라니·노루 등이 칩거하여 흙벽이 아예 굴이 되어가고, 어쩌다 대문을 열면 인기척에 놀란 놈들이 미끄러지며 허겁지겁 뒷산으로 올랐다. 그런 곳을 기어코 딸의 떠돌이병을 잠재울 처방으로 내리셨으니 어머니의 집념도 어지간하다. 어찌 어른의 이끌림에 따랐다고만 하겠는가. 나름대로 빈 터를 새로이 일으켜보고 싶은 욕구가 한 몫을 했다.
집모양이 얼추 개량되어 갈 즈음, 현장을 둘러본 나는 뒤로 나자빠질뻔했다. 아궁이 살릴 방도에 자신이 서지 않은 건축업자가 방고래 청소를 한다며 구들돌을 몽땅 캐내어 뒤꼍 산머리에 부려놓은 것이다. 부뚜막도 이미 허물어 내린 상황에서 한옥 장인들이나 가능하다는 구들장을 어찌 배열할 것인가. 이리 갸웃 저리 갸웃 한참을 함함하더니 나를 보고 양보 좀 하란다. 편리하고 현대에 맞게 입식으로 가자 한다. 그래서 못 이기는 척 따른 것이 원룸형태의 주방이 되었다. 안방, 건넌방, 골방까지 보일러가 씽씽 도는 새로운 집이 만들어졌다.
그때부터 한 집안을 데워주던 구들장에 마음이 쓰였다. 널찍한 돌을 장독대 둘레석으로 사용하고 화단을 꾸밀 때나 화덕을 만들 때도 활용했다. 그러고 나자 자잘한 구들돌무더기가 자꾸만 '나도, 나도'하고 보채듯 시선을 잡았다. 궁리 끝에 뒤꼍을 정리하기에 이르렀는데 산에서 흘러내리는 흙도 방지할 겸 돌둑을 쌓는 일이다. 오래도록 그려온 밑그림대로 일은 진행되었다. 운행이 서툰 외발수레에 돌을 싣고 앞으로 밀다 뒷걸음질 치다 고꾸라지다 하며 둑을 쌓아나갔다. 황토벽돌로 먼저 중심을 잡고 거기에 기대어 크고 작은 돌을 구분하며 세우고 채우기를 반복했다. 그 과정에서 뜻밖에도 거북모양의 차돌이 나왔다. 열기에 달구어질 대로 달궈져 부식된 돌이 태반인 반면, 어떻게 이리도 섬세한 형상이 존재하는 것일까.
고향에서 새 집 지은 지 한 해만에 정부로부터 이주명령을 받았으니, 아버지로서는 억울하고 기가 막혔을 것이다. 초가를 면하고 좋은 목재로 큰 집을 지었다고 오가는 집배원이나 면직원도 흐뭇해했는데, 차후 그 지역에 채워질 '군사령부'라는 위용 앞에서 우리는 새로운 터를 물색하는 일이 시급해졌다. 그렇게 이사하던 날, 아버지는 구들을 모두 캐서 트럭에 싣고 나왔다고 한다. 그때 함께 묻어온 것일까. 아니면 처음 이 집터를 닦은 이들이 나름의 의미를 부여하고 보유했던 것일까.
고향집에서의 어렸던 우리들은 돌기가 뾰족뾰족하고 영롱한 차돌을 장독대 언저리나 꽃밭 가에 장식으로 놓아두고 돌도 자란다며 물을 주곤 했다. 헌데 케케묵은 소재를 이용해 돌둑을 치다보니 장수長壽의 상징인 거북형상에 가슴이 뛴다. 황금을 캔 것보다도 횡재한 기분이다. 고개를 쭉 빼든 것이며 잘록한 목덜미의 미끈미끈한 잔주름까지 영락없는 거북이다. 누리끼리한 바탕에 세월의 때가 배어 자연적 명암이 조화를 이룬 등껍질이며 눈자위. 돌로 해석하면 상층부 육각형의 돌기들이 마모된 밋밋한 밑돌이라 하는 표현이 더 맞겠다. 하지만 나는 예전의 버릇대로 부엌창 너머 잘 보이는 돌둑 위에 올려둔다.
그리고 남은 구들돌은 앞마당과 꽃밭 사이의 경계석에 섞어 쌓는다. 초자연적인 집을 꾸미기에는 제젹이다. 텃밭 호미질을 할 때마다 걸리는 돌멩이를 골라내어 돌담을 쌓는데, 거뭇하니 그을린 돌들이 충치처럼 섞여 웃음을 자아낸다. 앞마당의 미니돌담 쌓기는 벌써 세 번째 반복된다. 가지런하던 집합체가 잡풀이 무성해 뿌리가 성할 때면 당할 재간이 없는 연유이다. 안채 하나에 사랑채가 두 동인 이 집은 거창하게 큰 담장을 두를 수가 없다. 앞면은 기존 개량담장이 조성되어 있어 기와만 새로 얹었고, 대문간 똑은 외양간이 있던 건물을 헐어 훤하게 키를 낮춘 후 역시 기와로 마무리를 했다.
내가 손수 할 수 있는 일이란 그저 소규모 돌담내지는 돌둑흉내나 내는 짓인데 그게 참 재미있다. 돌 자리를 잡아 앉히는 일이 그리 어렵지 않다. 엉성한 곳엔 쐐기를 박고 둥그스름한 돌은 위로 올린다. 머릿속에 상을 그리고 그것대로 차근차근 해나가다 보면 가진 것 없이도 마음 뿌듯해진다. 소소한 일로 충만해지는 사람의 내면이 보인다. 정원을 넓히거나 줄일 때면 또 허물고 쌓기를 반복하겠지. 그러는 중에 비뚤배뚤 잘못 먹은 마음도 비로 서는 것을 느낀다. 크고 너른 욕망도 대거 가라앉는다. 별것도 아닌 일에 흥이 난 나는, 돌로 정한 소박한 경계 안에서 계절 따라 피고 지는 화초들 앞에 시부렁시부렁 혼잣말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