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등인이 켜는 별 / 이정화
어스름이 마당을 기웃거린다. 길 잃은 개인지 어린 고라니인지 모를 짐승이 살금살금 뜰을 건너온다. 길고양이 한 마리 담을 넘어 골목 저쪽으로 사라진다. 맞은편 산자락이 천천히 제 능선을 지우면서 어둠이 사위에 드리운다. 딸깍, 저녁의 처마에 낡은 등불을 켠다.
부엉이 울음소리, 쓰르라미 부비는 소리, 나뭇잎 스치는 소리가 들린다. 밤의 교향곡 선율을 따라 시냇물 소리도 넘실거린다. 주근깨 같은 별들이 이때를 기다렸다는 듯 하나둘 밤하늘을 수놓는다. 저 별빛 중에는 수억 년을 달려온 것들도 있겠다. 시간의 장구한 길이를 가늠하자니 먼 빛이 더욱 아득해진다.
내 삶은 등 하나를 찾는 여정이었다. 고속버스터미널에서 내린 그와 나는 두 손을 꼭 잡았다. 세찬 바람이 살 속으로 파고들어도 우리는 반드시 도시인으로 잘 살아 내리라 다짐했다. 어렵사리 변두리 반지하방을 얻어 살림을 차렸다. 창문으로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종아리가 기하학적인 그림처럼 보였다. 종일 햇볕 몇 조각만 들어 늘 빛이 고팠다. 아이들이 커나갈 미래를 위해서는 더한 역경도 이겨낸다는 마음 하나로 하루하루를 버티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현실이 드러났다. 장롱 뒤의 습기는 닦아도 닦아도 곰팡이가 슬었다. 비가 오면 방 안이 질척거렸고 바람이 불면 창문도 따라 덜컹댔다. 잠을 뒤척이다가 바깥에 나가면 하늘로 치솟은 고층 아파트의 불빛이 부러웠다. 가만히 올려다보면 아득한 위세에 눌려 그만 주눅이 들고 말았다. 우리는 언제 저런 불을 붙잡을 수 있을까. 몸으로 벌어먹는 부부에게 하늘의 별보다 더 따기 어려운 빛이었다.
나는 도시의 불나방이 되었다. 늦은 밤, 아스팔트를 달려 흔들리며 퇴근하는 신랑도 부나비였다. 도시의 밤 문화는 질기게 그의 바짓가랑이를 붙잡았다. 이상과 현실 사이를 헤매는 사이 십여 년이 흘렀다. 빚을 절반이나 떠안고 어렵사리 내 집을 마련할 수 있었다. 가구도 새로 들이고 근사한 조명도 달았다. 나의 영토에 몸을 눕힌다는 기쁨으로 한동안 잠을 설쳤다.
몇 년의 세월이 흘러갔다. ‘똑딱 ’손가락 하나로 훤하게 비춰주는 인공의 빛이 차갑게 느껴졌다. ‘목로주점 흙바람 벽에 삼십 촉 백열등이 그네를 타던’반지하의 시린 낭만도 사라졌다. 오로지 집 하나에 모든걸 걸었었다. 막상 꿈을 이루고 보니 어느 날 내가 원하던 그 등불이 맞는지 의문이 생겼다. 콘크리트 벽 속에서 불을 켜면 그 빛은 지독하게도 차갑게 다가왔다. 아무리 자신만을 비추어도 마음 저 편은 여전히 어두웠다. 저마다의 소박한 전등 한 두 개로 만족하는 삶이 그리워졌다.
산골살이를 염원하는 소망의 불하나 밝히고 싶었다. 누군가가 들어주었는지 십 수 년 만에 밥줄 따라 저절로 시골로 들었다. 손바닥만 한 저수지가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등을 달았다. 헬렌과 스콧 니어링 부부라도 된 것처럼 자연에 흠뻑 빠져들었다. 늦은 밤 불을 끄면 달빛이 호수 위에 은은하게 잔불을 밝히고, 밤하늘에선 별빛들이 무더기로 쏟아졌다. 시골에는 내가 그토록 그리던 빛이 지천에 있었다.
멀리서 바라 본 들판은 푸르고 아름다웠다. 하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삭정이에 소똥까지, 현실이 되었다. 순박한 이웃들은 깍쟁이 티가 나는 도시민이 못 미더웠던지 은근히 텃새를 부렸다. 앞에서는 웃지만 뒤로는 무수한 트집이 온 마을을 훑고 다녔다. 그들의 가슴을 열기 위해 부지런히 발품을 팔았다. 손에는 음식을 들고 얼굴에는 미소를 걸고 이웃집 대문을 숱하게 넘나들었다.
집은 논밭 한가운데 자리 잡았다. 마을로 들어서려면 우리 집을 지나가야 한다. 어두운 바다에 떠 있는 섬처럼, 그 섬의 등대처럼 집은 자연스럽게 마을의 안내자가 되었다. 어스름이 밀려들 때쯤이면 어린 왕자가 만난 다섯 번째 별에 사는 점등인이 되어 방 안이며 뜰에 불을 밝혔다. 멀리 반짝이는 불빛은 밤이 이슥해서 돌아오는 이웃들에게 반가운 존재였다. 저녁에 불을 켜는 일은 나만을 위한 점등이 아니었다.
시골생활은 낭만적이지만은 않다. 자고 나면 훌쩍 자란 풀과 싸운다. 돌아서서 흰 벽에 걸친 거미줄을 거둔다. 이곳저곳 수시로 손을 보지만 시간이 지나면 삐걱대 늘 망치를 들어야 한다. 시시포스가 굴리는 바위와 같은 형벌이지만 스스로 그러하기 위해 찾아 들어왔으니, 그런 자연에 동화되는 게 순리이다. 자연에서는 시간과 정성이 내 발 디딘 곳으로 흐르는 게 당연하므로.
수십 년 세월을 휘황찬란한 도시의 불빛 속에서 떠돌았다. 부나비처럼 맹목적인 춤도 춰 보았다. 하지만 그건 갈망하는 자에게 보이는 신기루 같은 허상이었다. 취하면 취할수록 더 허기지는 도시에선 늘 몸과 마음이 지쳐갔다. ‘산중거사’가 된 지금에야 비로소 나를 만나게 되었으니 참 다행이다 싶다. 생이 끝날 때까지 제대로 된 불빛 하나 찾지 못하는 사람들이 부지기수가 아닌가.
시골에서는 풍경이 나를 찾아온다. 춘삼월이 되면 개암나무 꽃밥은 작은 바람에도 누릇한 꽃가루를 뿌린다. 꽃들이 한바탕 흐드러지고 나면 송홧가루가 온 세상을 노랗게 덮는다. 별 같은 감꽃이 담장 위에 떨어질 때면 매실이 시리게 익어간다. 뜨거운 여름 지나 들판이 황금색으로 익고 뒷산에 단풍이 든다. 가만히 앉아서 누리는 호사이다. 아무도 힘을 보태지 않지만 그대로의 자연은 흘러간다.
맞은 편 산자락의 불빛들이 감국처럼 피어난다. 코끝으로 잔잔한 향기가 스며든다. 처마 끝에 매달린 등이 마파람에 살짝 흔들린다. 점등인의 별에 오늘도 어김없이 밤이 찾아오고, 어디선가 어린왕자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가로등을 켜는 일은 하나의 별에 한 송이 꽃을 피어나게 하는 것과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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