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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레 먹은 잎을 읽다/권정희

에세이향기 2022. 7. 25. 16:47

벌레 먹은 잎을 읽다

 

 

권정희

 

비바람 부는 날에 나무들이 몸 흔들면

떨어지지 않으려고 애쓰던 나뭇잎들

울음을 찔러 넣은 채 바닥 위로 눕는다

 

묵묵히 넋을 잃고 바라보는 잎 사이로

팽팽한 어둠 같은 침묵이 맴을 돈다

여리고 성한 잎들의 순서 없는 낙하행렬

 

바람이 지나가고 비조차 그친 후에

빈집처럼 남겨진 시리도록 맑은 하늘

그 아래 고요히 떠는 벌레 먹은 잎을 본다

 

남아도 그만이고 떠나도 그만인데

뜯기고 터진 몸을 얼레설레 곧추세워

햇살에 제 몸 말리며 반짝이는 저 빈생

 

무겁게 다가서던 시간들을 뒤로 하고

살아야지 버텨 보는 혈맥에 피가 돈다

구멍 난 잎사귀마다 얼비치는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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