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레 먹은 잎을 읽다
권정희
비바람 부는 날에 나무들이 몸 흔들면
떨어지지 않으려고 애쓰던 나뭇잎들
울음을 찔러 넣은 채 바닥 위로 눕는다
묵묵히 넋을 잃고 바라보는 잎 사이로
팽팽한 어둠 같은 침묵이 맴을 돈다
여리고 성한 잎들의 순서 없는 낙하행렬
바람이 지나가고 비조차 그친 후에
빈집처럼 남겨진 시리도록 맑은 하늘
그 아래 고요히 떠는 벌레 먹은 잎을 본다
남아도 그만이고 떠나도 그만인데
뜯기고 터진 몸을 얼레설레 곧추세워
햇살에 제 몸 말리며 반짝이는 저 빈생
무겁게 다가서던 시간들을 뒤로 하고
살아야지 버텨 보는 혈맥에 피가 돈다
구멍 난 잎사귀마다 얼비치는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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