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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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시

메밀전병/전윤호

에세이향기 2021. 5. 11. 02:42

-메밀전병/전윤호-


강원도 정선 오일장에 가면
함백산 주목처럼 비틀어진 할머니들이
부침개를 파는 골목이 있지
가소로운 세월이 번들거리는 불판에
알량한 행운처럼 얇은 메밀전을 부치고
설움을 잘게 다진 묵은지로
전병을 만들지
참 못생기고
퉁명스런 서방이
대낮에 이불 둘둘 말고 자빠진 모양
한입 씹으면
시금털털한 사는 맛을 느끼지
함석지붕을 때리는 빗소리 들으며
옥수수막걸리를 마시던 친구들은
하나둘 사라지고
뒤통수만 보여 주며 달아나던 처녀들도
간 곳 없는데
이 땅의 하늘을 떠받친 태백산맥 아래
아라리 흐르는 강 사이로
메밀전병 부치는 할머니들은
고소한 기름 냄새 풍기며
아직 그 자리에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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