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옥상 / 신미애
과묵한 나는
상처들을 사랑하지요 조용히 불러내어
내성적인 상처에게는 커피 한 잔을 내밀고
다혈질인 상처에겐 담배를 한 대 권하지요
애꿎은 울분을 공중에 줄줄 뱉어내는 단호한 표정에게
빼곡한 건물을 둘러보라고 허공의 품을 한번 보여주지요
섣부른 생각을 하나 싶어 가슴이 철렁 내려앉지만
심호흡 한 번에 단단히 마음을 추스르라고
아찔한 높이를 보여주지요
며칠 전 녹음기가 되어버린 엄마의 목소리를
이곳까지 끌고 온 학생이 맨발로 날았어요
굳게 다문 입과 분노에 찬 눈빛을 미처 읽기도 전
손이 닿지 않는 허공을 머리로 달려갔어요
거꾸로 뒤집힌 아이에게 그곳이 유일한 비상구였기에
나는 묵묵히 입을 다물었어요
하루가 돌아간 자리
종이컵과 담배꽁초 어지럽게 널린 이곳에서
나는 도시가 놓고 간 통증을 읽으며 눈이 따가워요
차디찬 어둠의 살점을 어루만져보니
그들의 체온과 닮았어요
내일은 또 어떤 풍경들이 몰려올까요
내 가슴은 상처를 널어 말리는 곳
하늘도 울먹이며 내 품에 안기기도 하지요
도시의 축축한 어둠을 도려낼 곳이 필요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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