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경(破鏡) / 조정은 토요일 오후, 성균관대학교 퇴계인문관에서 철학자들의 현상학에 관한 컬로퀴엄이 있었다. 이 학회의 회장인 지인의 초대로 참석은 했으나 흥미를 기대하진 않았다. 격식을 차리지 않는 토론이라지만 비전문가인 나로선 이해도 쉽지 않을 테고 골치 아플 게 뻔했다. 많은 사람이 모일 것이니 뒷자리 하나 채워주다가 슬쩍 빠져나오리라는 생각이었다. 강당으로 들어서자 참석자가 몇 안 되어 일단 놀라웠고, 나 빼놓고는 모두가 전문가들이란 사실이 당혹스러웠다. 주제발표자는 전북대 심혜련 교수로 이란 제목이었다. 이 재미없는 제목은 또 뭔가, 하여튼 철학가들이란 은유를 몰라요, 시큰둥하게 앉아서 발표자의 목소리보다 빠르게 인쇄물을 읽어나갔다. 나는 어느새 밑줄을 긋기 시작했다. ‘포스트 디지털시대’라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