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톱 탁본 / 김겨리 명사십리에 새발자국 수두룩하다 썰물에 쓰고 밀물에 퇴고하는 바다의 서사, 밀물이 화선지처럼 모래사장의 요와 철에 골고루 펼쳐지면 먹방망이에 해풍을 듬뿍 묻혀 바다를 본 뜨는 어머니, 씨감자 캐듯 아버지 배를 부리고 먼바다로 떠나시면 언젠가부터 어머니의 종교는 바다, 사하의 바다는 탁본체로 편찬된 어머니의 서재였다 해풍에 깎여 심하게 문드러진 아버지의 지문은 먼바다 일렁이는 격랑을 닮았다고 횟배 앓는 내 배를 쓸어내리며 혼잣말처럼 들려 주시던 얘기로 파도를 볼 때마다 아버지의 지문이 저랬었구나 라고 생각하며 내 지문을 바라보면 물결체의 행간들이 출렁이곤 했다 바다를 수소문해 아버지의 기별을 듣는 밤이면 창가 정화수에 푹 잠긴 보름달을 보고 손이 닳도록 어머니가 밤새 빌고 빌었던 치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