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향기

문향이 넘나드는 선방입니다

2024/05/24 2

그분이라면 생각해 볼게요/ 유병숙

그분이라면     생각해 볼게요/    유병숙    “당신, 점심은 드셨어요?”     아버님을 향해 묻는 어머니의 얼굴에 생기가 돈다. 방금 두 분이 마주앉아 드셨으면서 그새 잊으셨나 보다.    시어머니는 도돌이표처럼 말씀을 반복하신다. 답답해진 내가 “어머니, 좀 전에도 아버님께 여쭤 보셨잖아요.” 하니 어머니는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내가 바보라서 그래. 바보가 다 됐어.” 하며 울음을 터뜨리셨다. 당황한 내가 아무리 달래도 소용없었다. 허나, 울고 싶은 사람은 정작 나였다.    그 모습을 물끄러미 지켜보던 시아버님이 나를 부르셨다. 아버님은 내 눈을 피해 허공을 바라보며 말씀하셨다.     “네 어머니는 치매가 아니다. 그냥 건망증이 심하게 왔을 뿐이야. 그렇게 알거라.”    이 무슨 말씀이신..

좋은 수필 2024.05.24

눈과 귀와 입 그리고 코 / 곽흥렬

눈과 귀와 입 그리고 코 / 곽흥렬 오래전부터 알아 온 스님이 있다. 적막이 밤안개처럼 내려 깔리는 깊디깊은 산속에, 토굴을 파고 수십 년 세월을 참선으로 정진하던 눈 밝은 수행승이었다. 이름 모를 산새며 풀벌레들만이 스님의 벗이었다. 문명과 철저히 담을 쌓고 정진한 수도修道 생활은 영혼을 맑히고, 영혼이 맑으니 자연 마음의 눈으로 앞날을 내다보는 천리안이 생겨나게 되었던 게다. 이따금 도회의 시멘트 가루 묻힌 중생들이 찾아가 세상살이에서 입은 내면의 상처로 응어리진 가슴의 답답증을 하소연하면, 스님은 그때마다 시원스럽게 운세 풀이를 한 뒤 적절한 처방을 내려 주곤 했었다.그랬던 스님이, 무슨 인연에서였던지 산속 생활을 접고 북적거리는 대도시로 거처를 옮겼다. 생활은 자판기처럼 편리해지고 육신은 양털방석..

좋은 수필 2024.05.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