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고무신 염혜순 아버지의 고무신은 하얀 배였다. 아버지는 하얀 배를 타고 저녁마다 댓돌위로 올라서시며 큰기침을 하셨다. 그 기침 소리는 온 식구들을 긴장시키는 점호 나팔이었다. 어질러져있던 물건들을 한 순간에 치웠다. 아버지가 구부정하게 고개를 숙이고 문지방을 넘어서는 순간, 우리 모두는 차렷 자세로 도열하였고 거의 동시에 인사소리가 터져 나왔다. “다녀오셨어요!” 아버지는 동그란 안경너머로 집안과 우리를 한꺼번에 훑어보시고는 곧바로 없는 사람의 이름을 부르셨다. 아홉이나 되는 아이들 중 누가 빠졌는지 신기할 만큼 빨리도 알아채시곤 모두의 안전을 확인한 후에야 안방을 나가셨다. 아버지가 마루를 지나 건넌방으로 들어가시면 도열했던 우리들 사이에선 안도의 웃음이 새어 나왔다. 길어다 쓰는 물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