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향기

문향이 넘나드는 선방입니다

2024/06/06 3

막장 시

막장 / 김나영​ 폐광이 태백이나 정선에만 있는 게 아니다. 지리부도에는 삭제되어 있는 없는 게 없는, 서울특별시에도 폐광이 있다. 단돈 850원이면 몇 시간 안에 도착하는​ 이곳을 접근금지 구역으로 지정하자는 사람들과 뜨거운 밥 퍼주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몇 년째 대안 없이 불거지고 가끔 아이의 두 눈을 치마폭으로 가린 풍경이 빠져나가고 나면​ 잠시 술렁거렸던 공기가 다시 흑연 가루처럼 가라앉는​ 이곳에 갱도(坑道)나 채탄(採炭)의 흔적이 보이지 않는데 그들의 외투와 손과 신발이 검은 때로 반질반질하다. 햇빛도 그들의 몸에 닿자 순식간에 빛을 잃어버리고 희망이 차단된, 가느다란 빛도 새어나오지 않는​ 두 개의 막막한 구멍들과 나는 눈이 마주치고 말았다 영등포역 고가다리 아래, 서울역 주변이 아니더라도 기..

좋은 시 2024.06.06

격포

격포 / 고운기​격포라 찾아왔네 십년 만이든가來蘇寺 단풍 곱기도 했는데철없던 계집애들 여관집 밥 먹고차 한 잔 마신다고 몰려갔던 다방사람 드문 바닷가 거기 정담다방나이 든 여자 하나 하품만 하고 있었지십년 세월 깜박했네 어느새든가來蘇寺 단풍 아직 철 이른데어디였는지 정담다방 찾을 길 없고정답던 얘기만 허공 중에 떴겠구나콩국수 말아 먹는 여자 하나입에 든 것 삼키지도 않고“없어졌제라, 칠 년도 넘괐그만그 동안 한 번도 안 왔다요…….”서둘러 자리 뜨는 뒤통수만 가려웠다네.​- 고운기,『섬강 그늘』(고려원, 1995)​​​​격포 / 송유미​​미선나무 등걸에 기대어 속을 다 뒤집고 가는파랑주의보, 허리가 휜 뒷모습 바라본다.양철구름은 나뭇가지에 걸려 뒤뚱거린다.방파제 뒤웅박 안에 든 촛불은 시나브로 혼을 태운..

좋은 시 2024.06.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