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향기

문향이 넘나드는 선방입니다

2024/06/14 3

징/진순분

징/진순분아무도 모르게 나 홀로 울고 싶을 때징이 되고 싶다 징 소리로 떨고 싶다내 온몸 푸른 전율에뼈마디 녹아나도록타고난 청승의 목청봇물 터진 서러움이나산 같은 절망 물리치는그 속 울음이고 싶다빛나는 눈물로 걸러낸몇 톨 시어 익을 때까지아무도 모르게 나 홀로 울고 싶을 때징이 되고 싶다 징 소리로 울고 싶다소리로 환해진 향기시혼에게 바치고 싶다

좋은 시 2024.06.14

고무신/고경숙

고무신/고경숙 한 짝은 멀리 부엌문 앞으로 날아간 채나머지 한 짝이 우는소리 들렸다엎어져 땅에 코를 박고메리처럼 울었다꺾어진 골목 막다른 셋집낙엽이 수북이 쌓인 토방 밑에서가끔 우는 고무신은어느 저녁엔 밀린 기성회비가 되었다가서리 내린 아침엔시든 무청 한 단처럼 무거운 다리를 끌고우체국 앞을 서성이며 전신환을 기다리다가어느 한밤엔 수족 잃은 늙은 바람처럼코를 풀어대며 울었다밑창이 닳아 야들야들한 위장은선뜻 대문 밖으로 나서지 못하고죽은 전나무 이파리 우수수부서져 내린 저물녘필통을 덜그럭거리며 돌아오다아이는 괜히 메리만 을렀다

좋은 시 2024.06.14

슬리퍼를 찾다가/황금모

슬리퍼를 찾다가 제구실을 하지 못하는 다른 쪽을 위해열심히 그 행방을 쫓았다아니, 이미 그것에 길들여진허전한 내 발을 위해눈길 닿는 곳곳을 훑다가가 닿은 곳,깊숙한 침대 밑에어둑한 또 다른 세상이 있다는 걸 알았다찾다가 포기해 버린 귀고리 한 짝튕겨 나온 퍼즐 몇 조각억울하게 화풀이의 대상이 된찢어진 과속 범칙금 고지서까지관심에서 밀려난 눅눅한 사연들이저들의 언어로 웅성거리고 있다따지고 보면햇빛 안 드는 세상이 어디 그곳뿐이랴나는 그곳에서급하게 서두르다가얼결에 빗나간 발길질 한번 한 것뿐인슬리퍼 한 짝을 찾아내어먼지를 털고 제 짝을 맞춰 주었다다시 편해진 건내 발이다

좋은 시 2024.06.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