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들이다 / 전미경 서녘 하늘은 불의 몸짓이다. 노을이 짜낸 주황빛을 스러지는 뒤태라 하기엔 되살아난 축제장이다. 긴 그리움을 지나 재회의 순간을 맞이하는 연인의 마음이 이런 것일까. 달뜬 붉음에 눈빛만 담아도 온몸을 붉게 물들일 것 같은 태움의 시간이다. 마음은 이미 붉음으로, 시간보다 더 빨리 닿아 있다. 이렇듯 붉은 날이 온몸에 스며들 때면 아끼던 소지품 하나 둘 꺼내어 마음을 성형하듯 물들이고 싶다. 서랍 속 빛바랜 손수건이 재회의 순간을 기다리고 있다. 한때는 부러울 것 없는 귀족의 삶이 아니었던가. 드러내는 일에 가장 먼저 얼굴 내밀던 시절이 있었다. 예를 갖춘 자리일수록 그의 가치는 더했다. 외출할 때나 슬픔을 이기지 못할 때 마음을 닦아 내며 평정심을 유지시켜 주기도 했다. 다시 세상으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