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필/김정화 연필이 부러졌다. 가방에서 성한 연필을 꺼내 공란을 매워 나갔다. ‘감사합니다.’ 인사를 하고 그 집을 나왔다. 2010년 인구주택 총 조사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조사원으로 종사하고 있다. 조사표를 받아들고 대상 가구를 찾아갈 때는, 아직도 처음처럼 마음이 설렌다. 그 사람들의 음지와 양지를 빌려 통계에 필요한 데이터를 만드는 일은 늘 조심스럽다. 삶의 겉모습만 베끼지 않고 속마음을 어떻게 얻어내어 적을 것인지, 그 속사정을 헤아려야 한다. 되도록 소소한 정보들까지 다 적어 와서는 필요로 하는 서식에 맞추어 넣고 나머지 자료들은 흔적도 없이 지워야 한다. 통계가 지니는 속성의 한 단면인 현란한 눈속임에서 벗어나야한다는 명제를 굳이 염두에 두지 않더라도 어떻게 적어야 하는가는 늘 고민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