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치 똥을 따며 / 심선경 나이 오십이 넘어 소주 맛을 알게 되었다. 새벽녘에 내린 소낙비에 잠이 깨어 아무리 뒤척여도 다시 잠들기가 힘들다. 부엌에 나와 냉장고에 든 소주 한 병을 꺼낸다. 기껏해야 마른 멸치 한 줌을 고추장에 찍어 먹는 것이 안주의 전부지만, 이제 안주 없이도 술맛이 쓸 때와 달 때를 구분할 수 있게 되었다. 멸치 대가리를 떼어내고 새까만 똥을 빼낸다. 멸치 똥을 쉽게 빼내려면 아가미 쪽에 이쑤시개를 넣고 아랫배 부분을 들어 올리듯 하면 모양이 흐트러지지 않게 멸치 똥만 제거할 수 있다. 이 방법을 몰랐을 땐 멸치를 반으로 쪼개어 속에 든 새까만 똥을 긁어내느라 멸치 몸통이 부스러진 게 태반이었고 깔아놓은 신문지엔 멸치가루가 수북했다. 멸치의 어원은 물 밖으로 나오면 금방 죽는다는 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