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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수필

매미의 껍데기/임병숙

에세이향기 2023. 4. 9. 07:04

 매미의 껍데기/임병숙

뒤뜰의 감나무에서 매미의 울음소리가 들린다. 그곳은 그늘이 좋아서인지 둥치가 든든해서인지 여름만 되면 녀석들의 보금자리가 되었다. 올해도 어김없이 울음소리가 감나무 잎을 흔들었다. 심술궂은 햇빛과 잔인한 바람도 막아주는 매미의 울음소리에 귀를 기울여 보았다. 풀죽은 나뭇잎처럼 무더위에 지친 심신으로 청량제처럼 스며든다.

 며칠 동안 쉬지 않고 들리던 자리에 매미의 껍데기가 매달려 있다. 불필요해서 알맹이만 쏙 빠져나간 것일까. 박제처럼 매달려 있는 껍데기를 살짝 만져 보았다. 어디론가 날아가 버린 녀석의 생김새를 쉽게 유추해 낼 수 있는 모습이다. 가만히 들여다보니 애절한 울음이 고막을 울린다. 심신을 적셔주던 울음소리는 울음이 아니라 신음이었을까. 해탈하며 입가로 새어 나왔을 비명이 들린다. 다른 녀석들과 달리 산고 같은 고통을 견디며 벗어버린 껍데기는 무엇일까.
 아주 오래전, 손바닥만 한 목공소를 하던 큰 오빠가 교통사고를 당했다. 서른 두 살의 꿈은 파편이 되어 날아갔고 몸은 며칠 동안 깊은 잠만 잤다. 생사를 넘나드는 절박함만큼이나 더 절박했던 것은 병원비였다. 서울에 있는 대형 병원의 입원비는 거품처럼 늘어나더니, 집안을 무거운 침묵으로 짓눌렀다. 큰 오빠를 제외한 다섯 남매가 있었지만 그리 넉넉한 형편이 아니었다. 사채를 끌어 쓰던 아버지의 어깨가 점점 쳐지더니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 보였다.
 집에 웅크리고 있는 날이 많은 아버지에게 통장을 드렸다. 그 통장은 스물세살의 분출되기 전의 용암 같은 욕구를 가슴 속으로 밀어 넣고 만든 것이다. 그런 것을 잘 아는 아버지는 이 다음에 꼭 갚아주겠다고 하셨다. 그 약속은 아버지가 떨어뜨린 눈물방울처럼 가슴에 축축하게 스며들었다. 그러나 대가를 바란 게 아니었기에 투명한 햇살에 물기를 건조하게 하듯, 머릿속에 새겨 두지 않았다. 전처럼 아버지의 어깨가 다부져 보이고 무거운 침묵 대신 밝은 햇살이 마당에 가득한 게 보기 좋았다. 그리고 시간은 집 앞을 흐르는 강물처럼 기억의 저편으로 흘러갔다.
 
 언제나 같은 모습일 것 같던 아버지가 칠순이 가까워지니 눈에 띄게 주름이 늘어났다. 게다가 갑작스레 혼자되면서, 농사꾼 같지 않다는 말을 듣던 멋쟁이는 영락없는 촌로村老로 변했다. 예전처럼 놀기 좋아하고 남에게 지기 싫어 하던 아버지가 아니었다. 일이 힘들기도 하겠지만 당신을 감싸고 있는 지독한 외로움 때문인지 기운이 없다고 하셨다.
 아버지는 식사보다는 술로 끼니를 잇는 날이 더 많았다. 휑하니 들어간 두 눈을 보면 가슴속에 아릿한 물결이 흘렀지만, 문득 그 약속을 떠올리게 되었다.
 "아버지, 그때 약속한 거 기억나세요?'
 기억력이 전만 못해서 모른다고 하면 어쩌나 했는데 아버지는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살아생전에 꼭 갚아 줄 테니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하셨다. 그때는 힘들어하던 아버지에게 용기를 드리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그런데 인제 와서 되돌려받고 싶은 욕심이 생기는 것은 왜일까. 한 번 고개를 든 욕망은 가속도가 붙은 자동차의 속도처럼 제어할 수가 없었다.
 나이가 들면서 늘어나는 주름처럼 이런저런 욕망이 생겼다. 물질적이든 정신적이든, 남이 가지고 있는 것을 탐내고 질시를 했다. 남들처럼 좀 더 넓은 집에서 불편하지 않게 즐길 수 있는 살림살이에 대한 욕심, 별다른 탈 없이 잘 자라고 성적도 뛰어난 아이들을 보면 내 아이들과 비교하며 가슴앓이를 했다. 재산을 많이 물려받거나 한 사람을 보면 부모님을 원망했다. 욕망의 빗금은 가슴 속에 수많은 선을 늘려나갔다.
 욕망이 비눗방울처럼 부풀려지던 내게 기다림이란 조급하게 갈증만 나게 했다. 한 해, 두 해 시간이 흐르면서 아버지는 칠순을 훌쩍 넘기셨다. 금방 무슨 일이 닥칠 듯한 조바심에, 빚쟁이라도 된 양 재촉을 했다. 일주일에 한 번씩 친정에 가던 발걸음도 끊었다. 아버지의 식사 준비며 집안일 등은 한숨처럼 쌓여갔다.
 정수리 부분이 훤해진 아버지가 서류를 들고 오셨다. 얼마 남지 않은 머리카락을 마저 뺏듯 진을 빼는 딸에게 지친 모양이다. 처음 보는 부동산 등기 이전 서류에는 생소한 용어가 많았다. 집 앞에 있는 논이 아버지의 성함 대신 내 이름으로 바뀐 것만 선명하게 보였다.
 "늦어서 미안하다. 이거면 되는지 모르겠다."
 식사도 제대로 못 했는지 아버지의 목소리에는 가벼운 진동이 느껴졌다. 그토록 원하던 것을 받았건만 뭐라고 대답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아버지도 아무 말 하지 않으셨다. 어색한 침묵의 틈으로 아버지의 꾸깃꾸깃한 잠바에서 퀴퀴한 냄새가 익숙하게 다가왔다. 그냄새는 코끝으로 들어와서 명치끝에 걸려서 내려가지 않았다. 가까이 사는 딸네 집에 몇 년 만에 오신 아버지는, 커피 한 잔만 드시고 일어나셨다. 버스 정류장을 향해 걸어가는 왜소해진 등에는 아이들이 메고 다니는 가방이 매미처럼 매달려 있었다.
 욕망이 많아지고 커질수록 무언가가 나를 단단하게 에워사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욕망이라는 겁데기였다. 껍데기는 세월이 흐를수록 욕망이라는 풍화작용을 거치며 더 단단해졌다. 그 속에서 나의 욕망은 점점 늘어났다. 더 많은 것을 원하게 되고 더 높은 곳으로 오르려 하고 더 많은 것을 누리고 싶어했다.
 줄어드는 법도 없다. 공기가 들어가면 부풀려지는 풍선처럼 점점 더 부풀려졌다. 욕망이 많아지고 부풀려지면서 나를 가두는 껍데기도 더 단단해졌다. 그속에 갇혀서 욕망을 비우는 것은 잊고 채우기만 했다. 단 한 번도 깨뜨리고 나올 생각을 하지 못했다.
 지난가을, 아버지와 볏 가마를 들던 장면이 나가왔다. 한 번씩 들 때마다 야윈 몸을 부르르 떨던 아버지의 이마에 굵은 핏줄이 섰다. 
 "농사꾼은 땅이 힘이다. 땅이 없으면 천하장사라도 힘을 못 쓰지.'
 어릴 때 아버지에게 많이 듣던 말이다. 평생 흙냄새에 묻혀 사셨으니 땅은 재산이라는 개념이 아니었다. 삶을 지탱해주던 버팀목이고 안락하게 감싸주었던 껍데기였다.
 매미가 지상에서 보낸 시간은 열흘 남짓이다. 얼마 되지 않는 날이지만 지상에서 지낸 시간이 전부였기에 일생이라고 할 수 있다. 짧지 않은 일생을 자신을 배워내고 덜어내는 연습만 한 것이 아닐까. 그렇기에 온몸이 찢기는 해산 같은 고통을 겪으며 껍데기를 벗었으리라. 그리고 마침내 나방이 되어 힘찬 날갯짓을 하며 날아간 것이리라.
 지금 내 몸을 감싸고 있는 욕망과 아집의 껍데기는 하등 불필요한 것이다. 나를 점점 더 피폐하게 만들고 주위 사람들을 고통스럽게 할 뿐이다. 그것을 버리지 못하는 것은 아둔하고 미련하기 때문이다. 매미의 일생보다 훨씬 짧은 시간 갖고 있던 것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단단하게 감싸고 있는 껍질을 깨뜨리지 않으면 부화할 수 없는 새처럼 그것을 버리지 않으면 나는 늘 그 자리에 머물러 있을 것이다.
 속이 훤히 보이는 껍데기에 귀를 기울여 본다. 조금 전과는 다른 울음소리가 들린다. 무더위를 식혀주던 울음도 아니고 심신을 맑게 정화해주던 울음도 아니다. 껍데기를 벗으며 고통스럽게 지르던 비명도 아니다. 모진 고통을 견딘 끝에 새로게 태어난 환희와 기쁨의 탄성이 부드럽고 여유롭게 가슴으로 스며든다. 나의 몸도 나비가 되어 날아 갈듯 가벼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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