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한 권의 生/고영서
달 비친 沙窓에 한이 많아
꿈 속의 넋에게 자취를 나기게 한다면
문 앞의 들길이 반 쯤은 모래로 되었을라나*
해동조선국 승지 조원의 처 이옥봉은
온 몸에 시를 감고 죽은 여인
여염의 아낙이 되어
지아비 얼굴을 깍아내리는 일 따위,
시 따위 쓰지 않으리라 맹세 했다
술로도 못 고치고 약으로도 다스리지 못하는
천형을 앓다
산지기의 누명을 벗기는
시 한 수로 내쳐졌으니
파도에 밀려 이 포구,
저 포구를 떠돌다
겹겹의 종이로 떠올랐으니
하나 같이 빼어난 구절양장이
명나라 원로 대신의 서가에
그렇게도 소중히 꽂혀 있었던것
함부로 언어의 작두를 타다
뼈째 썰리는 고통으로
내림굿이 되는 시
씨김굿이 되는 시
* 이옥봉의 시<몽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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