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등불/김영관
두메산골에 미수의 어머니가 홀로 기거하고 계셨다. 폭설이 내린 다음 날이었다. 어머니 집에 전화가 되지 않았다. 전화국에 문의했다. 어머니가 사는 동네에 통신선이 끊어져 복구 중이라 했다.
나는 대구에서 반찬 몇 가지를 챙겨 경주 산내로 향했다. 보름 만이었다. 운문댐을 끼고 돌아가는 길모퉁이 군데군데 빙판길이었다. 마음이 조급한 나에게는 위험하고 먼 길이었다.
“어머니!”
삽짝을 들어서며 큰 소리로 불렀다. 기척이 없었다. 마당이며 마루며 켜진 전등불만 나를 반겼다. 방문 문고리를 당겼다. 널브러져 있는 이불이 한방 가득이었다. 작은 봉창엔 비닐이 겹겹이 붙어 있었다. 어머니는 보온이 부실한 산골의 슬레이트집에서 성치 않은 몸으로 겨울을 나고 있었다. 가슴이 싸해졌다.
전기료깨나 나오겠다고 푸념하며 마당과 마루의 전등불을 껐다. 하늘은 잿빛으로 금방이라도 눈이 펑펑 내릴 것 같았다.
어디 가셨을까 하고 날짜를 짚어보았다. 아~ 산내 장날이구나! 장이 열리는 면 소재지까지는 약 사백 미터쯤 되는 거리였다. 나는 지름길인 논두렁길을 바삐 걸었다. 외딴집 모퉁이를 돌아서자 저만치 꼼지락거리는 사람이 보였다. 한눈에 봐도 어머니였다. 뛰어갔다.
“어디 갔다 오요?”
“누고 애비가.”
몸이 닿고 나서야 덥석 안겼다. 어머니는 백내장이 심해 내 목소리를 듣고서야 나를 알아본 것이었다. 어머니 손에 들려 있는 까만 비닐봉지를 받아 들었다. 김치 두 쪽이 시큼한 냄새를 풍겼다.
“밥은 먹었어요?”
“응, 이제 가서 먹으면 된다.”
보름 전에 가져다드린 반찬이 떨어진 것이 분명했다. 어머니는 반찬이 없어 아침도 거르고 장에서 김치 두 쪽을 사서 오는데 반나절이 걸린 것이었다. 어머니를 부축하며 삽짝을 들어서는데 까치 부부가 반복해서 나를 나무라는 것 같았다.
빨리 내 손으로 따뜻한 밥을 하여 대구에서 갖고 온 나물 반찬으로 늦은 아침밥을 대접해드리고 싶었다. 전기밥솥을 열었다. 밥솥에 밥이 반 이상 남아있었다. 한눈에 봐도 풀기가 없었다.
“언제 한 밥이요?”
“어제 아래.”
어머니는 이틀을 먹었는데 며칠은 더 먹을 수 있다고 했다.
“그러지 말고 때마다 따뜻한 밥을 해 먹으소.”
그러자 어머니는 잠시 잠깐 뜸을 들이고 힘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수도가 얼어 물이 안 나온다.”
순간 나는 멍했다.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부엌 물통에 물을 채우기 위해 플라스틱 물통을 들고 이웃집으로 갔다. 물 한 통을 들고 집으로 오면서 나는 몇 번이나 손을 바꾸며 씩씩거렸다. 그때 깨달았다. 지팡이에 의지해야 겨우 두어 걸음을 떼다 쉬기를 반복하는 어머니가 한 손에 지팡이, 한 손엔 주전자를 들고 물을 떠 와야 하는 이웃집은 험한 십 리 산길이었음을. 산골의 겨울은 어둠도 바빠지는지, 이른 땅거미가 내려오고 있었다.
‘저녁 장사 시간까지 늦지 말고 오소.’
집사람의 말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바쁜 마음을 달래며 어머니와 소찬의 밥그릇을 비웠다. 그릇 두 개를 씻어 선반에 얹으며 말했다.
“밖에 나갈 때는 전깃불은 끄고 다니소.”
그러자 어머니는 잠시 나를 쳐다보시더니 넋두리처럼 말끝을 흐리셨다.
“어디 갔다 오면 너무 적적해서 불이라도 켜져 있으면...”
순간 먹먹함을 목 안으로 삼켰다. 도대체 나는 무얼 생각하는지 참 못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루를 내려서며 몇 푼의 돈을 마른 풀잎 같은 어머니 손에 올려주자 어머니는 머릿속 가계부를 꺼내 읽으셨다.
“지난번에 주고 간 돈으로 수도세, 전기세, 유선세, 전화세, 이장 수고비, 내 약 조금 사먹었다.” 그러곤 덧붙였다.
“돈을 너무 많이 써 미안하다.”
부모와 자식의 가슴 깊이는 얼마만큼의 차이가 나는지 가늠할 수가 없었다.
삽짝 나서다 나는 뒤돌아서서 필요 이상으로 목소리를 높였다.
“마루와 마당 불도 항상 켜놓고 지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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