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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집 마루/마경덕

에세이향기 2022. 6. 1. 16:29

시골집 마루

마경덕

 

마루는 나이를 많이 잡수신 모양입니다

뭉툭 귀가 닳은 허름한 마루

이 집의 내력을 알고 있을 겁니다

봄볕이 따신 궁둥이를 디밀면

늘어진 젖가슴을 내놓고, 마루귀에서

이를 잡던 쪼그랑할멈을 기억할 겁니다

입이 댓발이나 나온 며느리가 아침저녁

런닝구 쪼가리로 박박 마루를 닦던

그 마음도 읽었을 겁니다

볕을 따라 꼬들꼬들 물고추가 마르던 쪽마루

달포에 한 번, 건미역과 멸치를 이고 와

하룻밤 묵던 입담 좋은 돌산댁이 떠나면

고 여편네, 과부 십 년에 이만 서 말이여

구시렁구시렁 마루에 앉아 참빗으로 머릴 훑던

호랑이 시어매도 떠오를겁니다

어쩌면 노망난 할망구처럼 나이를 자신 마루는

오래전, 까막귀가 되었을지도 모르지요

눈물 많고 간지럼 잘 타던 꽃각시

곰살맞은 우리 영자고모를 잊었을지 모르지만,

걸터앉기 좋은 쪽마루는

지금도 볕이 잘 듭니다

마루 밑에 찌든 고무신 한 짝 보입니다

조용한 오후

아무도 살지 않는 빈 마루에 봄이 슬쩍 댕겨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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