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치 타작
유계자
저녁 물빛이 파도에 젖어갈 무렵
바다의 봉제선이 열리고 멸치들이 올라온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사투
유자망 어선에 그물을 올리고 내리는 일
멸치잡이 아버지와 할아버지까지 합치면 백 년의 고목이다
태풍이 몇 번이나 휩쓸어도 고집 센 뿌리는 잘도 버텼다
대처로 나가 단번에 어군을 찾아내고
던져라!
호기 있게 목청을 높여
배 한 척 아버지 이름 붙여주고 싶었는데
마음뿐인 효도는 바다가 너무 일찍 받아 갔다
대신 바다 농사를 소작으로 물려받아
일정한 간격으로 부표를 오르내리고
꼬인 생을 풀고 찢어진 날을 기워 재투망을 하며
간간이 그물을 펼칠 때마다 환하게 꽃피는 밤
비린내를 손으로 훑으며 밤새 달라붙던 질긴 졸음을
에헤 에헤
봄볕에 이불을 털 듯 멸치를 턴다
[출처] 멸치타작 / 유계자|작성자 마경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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