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향기

문향이 넘나드는 선방입니다

전체 글 1898

목리/배문경

목리 배문경 장롱 한 짝을 들였다. 친정집 창고에서 먼지를 뒤집어쓴 채 자리만 차지하던 장롱이다. 앞은 느티나무에 옆과 뒤는 오동나무로 된 전통 방식의 맞춤이다. 비록 유행이 지나고 낡았지만 합판에 무늬 필름을 덧씌운 가구보다 나을 것 같았다. 장롱은 부모님과 오래도록 한 방에서 숨을 쉬었다. 연륜이 있는 물건은 내력을 품어서 그런지 곳곳에 부모님의 숨소리가 배어있는 듯하다. 두런두런 나누는 말이며 갸릉갸릉 가래소리와 쿨럭쿨럭 기침소리 그리고 얼굴에 새겨진 주름까지 느껴진다. 물걸레로 닦고 광택제로 문지르자 깊은 잠에 빠져 있던 삶의 무늬가 깨어난다. 물결일까, 바람의 무늬일까, 아니면 높은 곳에서 내려다본 세상의 등고선일까. 이쪽에서는 산모롱이를 지나는 물처럼 유려하게 휘돌고 저쪽에서는 들판을 달리는 ..

좋은 수필 2022.03.07

바람악보 / 전성옥

바람악보 / 전성옥 바람이 내려앉는다. 힘없는 바람이 더 이상 가지 못하고 내 앞에서 주저앉는다. 무릎에 얹힌 뼈 없는 바람. 먼 길을 지치도록 왔는지 긴 병에 몹시 시달렸는지 몹시도 야위었다. 가난한 집 굴뚝의 연기처럼… 참으로 가볍다. 야윈 바람의 무게에 휘청한다. 나는 풀썩 주저앉는다. 담도 없고 울도 없는 짙은 고동색의 마루청. 휑하니 넓은 그 마루청 한쪽 가장자리에 앞이 낮고 뒤가 높은 비스듬한 그 마루의 중간 높이쯤에. 벌써 한참 되었다. 초가을 아침의 눅눅한 하늘이 사람의 어깨로 내려앉은 지가. 팔랑팔랑, 얇은 것들이 날아 내린다. 마루청 가장자리를 따라 듬성듬성 둘러선 느티들. 어리다. 아직 어리다. 마루를 뚫고 선 세 그루의 느티들. 이들 역시 허리가 두어 줌밖에 되지 않는다. 이들이. ..

좋은 수필 2022.03.07

내 몸은 생로병사를 세습한다 / 김서령

내 몸은 생로병사를 세습한다 / 김서령 초저녁 잠이 많아졌다. 텔레비전을 보다 말고 꾸벅꾸벅 존다. 깜짝 놀라 고개를 들어보면 좀 전에 보던 드라마가 아직도 계속된다. 이건 영락없이 우리 엄마의 동작이다. 만년의 엄마는 아홉 시만 넘으면 텔레비전 앞에서 지금 나처럼 꾸벅꾸벅 졸곤 했다. 그러지 말고 누워서 자라고 권하면 얼른 정색하곤 했다. “안 잤다, 야야. 안 자는 사람을 왜 자꼬 잔다카노?” 어떨 때는 버럭 화를 내기도 했다. “ 글쎄 안 잤다캐도!” 맞다. 졸았다는 것을 인정할 수 없다. 집중해야 마땅할 흥미진진한 프로그램 앞에서 내가 졸다니! 비록 자식이더라도 자존심이 상하는 건 마찬가지다. 그게 노화(老化)든, 피로(疲勞)든, 해이(解弛)든 스스로 수긍하기도 싫고 남에게 들키는 건 더 싫다. ..

좋은 수필 2022.03.07

스타킹/김경희

스 타 킹 김 경 희 에로티시즘의 기호학은 여인의 다리에서 완성된다고 했다. 남자들은 여자들의 스타킹에 환호한다. 본다는 행위는 육감이 동원되기 마련이다. 다리의 아름다움은 스타킹에서 완성된다. 발끝서 엉덩이까지, 입었지만 말갛게 속살이 비치니 감각이 핀처럼 날카로워지는 걸까. 아슬아슬한 미니스커트에 유혹이 강렬한 원색 스타킹을 신은 여인이 계단을 오르면 남자들은 목이 탄다. 스타킹과 속살의 색이 극명한 대조를 이루며 특별한 자극을 선사한다. 늑대들의 심장박동이 다급해진다. 한 걸음 뗄 때마다 허벅지의 깊숙한 곳까지 숨바꼭질을 해대니 어질어질해지리라. 덩실 뜬 달도 내려와 핥고 싶어질 만큼 홀리는 아찔한 곡선에 남자들의 상상력은 꼭대기에 다다른다. 페티시즘도 스타킹에서 퍼지지 않았던가.《남자의 물건》으로..

좋은 수필 2022.03.04

몽돌/김만년

몽돌 김 만 년 한 바탕 격류가 휩쓸고 간 뒤라서 그런지 강가에는 지층 깊숙이 숨어 있던 햇돌들이 많이 나와 있다. 돌의 온기를 느끼며 자근자근 맨발로 걷는 이 시간을 나는 좋아한다. 돌들의 형상은 하나같이 닮은꼴이다. 마치 갓 입문한 동자승들이 절간 뜨락에 앉아 재잘재잘 일광욕을 즐기는 듯 모두가 개구지고 정겹다. 느린 발끝에 유독 둥글고 반짝거리는 돌 하나가 채였다. 작은 몽돌이었다. 유심히 살펴보니 나이테 같기도 하고 사람의 귀 모양 같기도 한 몇 가닥의 문양이 고지도처럼 흐리게 새겨져 있다. 회색빛 결이 무척 단단해 보였다. 돌에도 나이테가 있을까. 이 돌은 어느 먼 시간에 살다가 여기까지 흘러 온 것일까? 문득 돌의 여정이 궁금해진다. 돌의 문양 속으로 억겁의 풍화가 느껴진다. 흐릿한 돌의 등고..

좋은 수필 2022.03.03

홍어/김선태

홍어 - 김선태 ​ ​ 한반도 끄트머리 포구에 홍어 한 마리 납작 엎드려 있다 폐선처럼 갯벌에 처박혀 있다 스스로 손발을 묶고 눈귀를 닫아 인고와 발효의 시간을 견디고 있다. ​ 아무도 없다 누구도 찾아오지 않는다 다만 이 어둡고 비린 선창 골목에서 저 혼자 붉디붉은 상처를 핥으며 충만한 외로움을 누리고 있다. ​ 그리하여 비바람 눈보라는 쳐서 그 신산고초에 제맛이 들 때 오래 곰삭아 개미*가 쏠쏠할 때 형언할 수 없는 알싸한 향기가 비로소 천지간에 가득하리라. ​ ​ *개미 : 곰삭은 맛 ​ ​ ​ 홍어를 잡숴 보셨는가? "형언할 수 없는 알싸한 향기”를 풍기는 홍어, 그러나 어떤 이들은 그것의 “알싸한 향기” 때문에 먹지 않는다. 그 곰삭은 냄새가 역겹기 때문이다. ​ 아무튼 이 시에서 홍어의 이미지..

좋은 시 2022.03.03

바지랑대 / 허이영

바지랑대 / 허이영 가을장마인가 보다. 잠깐 해가 비추더니 금세 퉁퉁 부은 하늘에서 횃대비가 쏟아지고는 하다가 유리알처럼 투명한 하늘이 열렸다. 그 동안 궂은 날씨로 볕을 보지 못한 이불은 습기가 차고 쾨쾨한 냄새가 났다. 문득 이불에서 나는 햇살 냄새가 그리웠다. 여름의 흔적을 털어내기 위해 가을바람이라도 쐬어야겠다. 어스름 땅거미가 내릴 쯤, 이불 걷는 시간은 가장 행복한 시간이다. 하루 종일 낮볕이 다듬이질한 이불에서 폴폴 날리는 햇볕 냄새와 손바닥을 간질이는 그 따스함이 온몸으로 전해질 때, 하루의 피로가 흔적 없이 사라지고 만다. 오랜만에 여기저기 땀이 밴 속옷과 여름살이 흰옷을 모아 찜통에 넣고 푹푹 삶았다. 밥을 짓는 소시랑게처럼 북적거리던 거품이 이내 찜통 밖으로 울컥 끓어 넘쳤다. 속옷에..

좋은 수필 2022.03.02

박하사탕 / 김영미

박하사탕 / 김영미 현관 계단 끝에 검정 봉지 하나가 놓여 있다. 봉지에는 이름도 성도 없지만 나는 누가 갖다 놓았는지 알 수 있다. 안에 담긴 것도 반갑지만 봉지 주인의 안녕을 확인했기에 마음이 놓인다. 우리는 이렇게 봉지로 서로의 안부를 전하고 마음을 읽는다. 봉지 안에는 봄빛을 겨우 받은 어린 쑥이 한 줌이다. 옆에는 깨끗이 다듬은 달래 한 움큼이 곁들여져 있다. 그대로 냄비에 들이기 좋을 만큼 단정한 모습이다. 봄이라 향기 머금은 그것들을 애써 장만하신 마음이 그대로 느껴진다. 우리 집에서 보면 어머니가 사시는 마당이 보인다. 지척이라도 문 꼭꼭 닫고 들어앉으면 백리도 넘는 거리다. 어머니가 홀로 계시는 마당을 내다보며 밤새 걱정이고 궁금하다. 이렇게 다녀가신 흔적을 봐야 마음 귀퉁이 짐을 내려놓..

좋은 수필 2022.03.02

처마/장미숙

처마 / 장미숙 “동네입구 가게 처마 밑에서 공기놀이 하던게 나는 제일 생각나.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 동창모임에 간 날, 먹때왈이란 별명을 가졌던 친구가 눈을 반짝거리며 말했다. 먹때왈은 여름에 밭에서 많이 볼 수 있던 까만색 앙증맞은 열매로 까마중의 사투리다. 눈동자가 새카맣고 야무졌던 친구를 동네 사람들은 먹때왈이라 불렀는데 그 친구는 유난히 고향에 대한 정이 깊었다. 처마란 말 때문이었을까. 공기놀이란 말 때문이었을까. 여섯 명 친구들의 표정도 어느새 유년으로 돌아간 듯 얼굴마다 그리움이 가득 번져나고 있었다. “맞아. 가게 집 처마 밑에 어지간히 들락거렸지. 학교 끝나면 와르르 몰려가서 공기놀이 하고 핀 따먹기 하고 놀았던 걸 어떻게 잊겠어.” “그 뿐이야. 갑자기 비가 오면 가장 피하기 ..

좋은 수필 2022.03.02

흑산도/김선태

흑산도 김선태 상한 짐승처럼 절뚝거리며 스며들고 싶었다 더는 갈 수 없는 작부들의 종착역 슬픔은 더 깊은 슬픔으로 달래라 했던가 늙은 작부 무릎에 슬픔을 눕히고 그네의 서러운 인생유전을 따라가고 싶었다 삭을 대로 삭은 홍어 살점을 질겅질겅 씹으며 쓰디쓴 술잔을 들이켜고 싶었다 그렇게 파란만장의 시간을 가라앉혀 제대로 된 슬픔에 맛이 들고 싶었다 때론 누추한 패잔병처럼 자진 유배를 떠나고 싶었다 살아서 돌아갈 수 없는 천형의 유배지 절망은 더 지극한 절망으로 맞서라 했던가 후미진 바닷가에 갯고둥 하나로 엎어져 흑흑 파도처럼 기슭을 치며 울고 싶었다 다시는 비루한 싸움터로 나아가고 싶지 않았다 그대로 애간장 까맣게 타버린 한 점 섬이 되고 싶었다

좋은 시 2022.03.01

염장고등어/우은숙

딱 한번 우은숙 가슴에 달빛 하나 옮겨 심지 못한 내가 뼈에 밴 눈물의 독소 뽑지도 못한 내가 딱 한번 물들겠다고 노을 끝에 서있다 염장 고등어 우은숙 뱃속의 짠내는 그만의 무기다 심해를 기억하는 등푸른 솔기들이 숨겨둔 결기를 깨워 천지간에 활을 쏜다 밀쳐낸 파도만큼 단련된 몸의 언어 저 혼자 깊어지는 뜨거운 침묵 속에 허기진 두 눈 굴리며 비린내로 흔든다

좋은 시 2022.03.01

바람을 먹는 돌 / 김정화

바람을 먹는 돌 / 김정화 마을로 들어선다. 구릉에 우뚝, 그들이 줄지어 있다. 바람을 맞은 검은 나신들이 하늘을 떠받든다. 살아 숨 쉬는 모든 것들을 지배하는 부동의 자세가 숭고하다 못해 신령스러운 기운마저 느껴진다. 여기는 어디인가. 나는 이 석상들을 만나고자 무던히도 많은 돌을 지나왔다. 조심스레 그들 곁에 다가선다. 서 있는 들에서 인간의 모습을 떠올린다. 인디언처럼 단단한 어깨와 구도자의 평온한 등이 보인다. 묵묵히 눈을 감고 있거나 먼 하늘을 올려다보는 노석(老石)도 있다. 얼굴 또한 여유롭고 신비롭다. 각각의 표정과 몸짓이 다르고 햇살 따라 낯빛이 변하기도 한다. 강물을 닮은 논매와 노을빛 미소가 지긋이 나를 내려다본다. 움푹 들어간 눈자위에 빗물 고인 석상은 눈물을 담은 듯 슬퍼 보이고 하..

좋은 수필 2022.03.01

벽, 시래기 국밥/이남순

벽/이남순 경의선 지척에 두고 돌고 돌아온 백두산 대못 친 가슴팍이냐, 혈흔 같은 말뚝 앞에 한참을 그냥 선채로, 찬비에 젖어 왔다 시래기 국밥 이남순 그 집 귀신 되라하신 아버지 명을 따라 죽을 둥 살 둥으로 나물 팔아 연명하던 당고모 시집살이가 구전처럼 이어진다 전쟁은 끝났는데 돌아오지 않는 남편 시부모 봉양하며 유복자 키우느라 일생을 먹어왔다는 저 국밥 이야기

좋은 시 2022.03.01

속돌/안희옥

속돌 안희옥 겨울이 지나가는 바다는 부산하다. 끊임없이 물결을 만들어내는 바다와 하얗게 부서지는 포말, 얼굴에 부딪히는 갯바람이 봄을 재촉하듯 습습하게 불고 있다. 군데군데 잔설이 남아 있는 건너편 해안 풍경도 이제 손에 잡힐 듯 정겹게 다가온다. 바알갛게 부서져 내리는 노을만이 숨죽인 채 밤을 기다리는 해안가의 건물에 엷은 실루엣을 드리우고 틈틈이 비어져 있는 공간마다 어둠을 채워 나간다. 겨울이 가면 반드시 봄이 오는 자연의 섭리 속에 파도 소리만이 질펀한 삶의 눈물이 되어 내 가슴에 자박자박 녹아들고 있다. 바다의 냄새에 한껏 취해 걷는데 뭔가 발에 툭 걸렸다. 돌이다. 돌은 붉은 노을빛에 몸을 말리는 듯 길게 누워 있었다. 돌을 집어 들고 이리저리 살폈다. 보드라운 모래밭이 펼쳐져 있는 이곳과는 ..

좋은 수필 2022.03.01

오늘의 두부/이영식

오늘의 두부 이영식 짐작하겠지만 취하고 나면 먹어치우는 게 상책이다 왁자한 시장 좌판에 발가벗고 나앉은 아라한(阿羅漢), 제 몸 갈라 먹을 중생 앞에서도 몸가짐 초연하시다 떼구름처럼 엉겼던 잡념일랑 모판에 눌러 짜서 삼베 천으로 걸러냈다 좌우, 어느 쪽 색깔이나 사상에 기울어지지 않는 맛으로 무엇을 도모하지 않는다 두부의 ‘부(腐)’는 썩었다는 뜻이 아니고 뇌수(腦髓)처럼 연하고 물렁물렁하다는 전갈이니 보시라! 네모반듯하게 각이 졌지만 안과 밖 한결같이 순한 생각만 한다 삶의 비린내 진동하는 틈에서도 제가 건너온 불보다 더 뜨겁게 칼 디밀고 들어올 순명(順命)의 시간을 초연히 기다리고 있는 오늘의 두부, 어제의 뼈저린 후회나 내일의 걱정으로 콩새만한 생각에 갇힌 당신께 기원전부터 전해오는 진국의 경전 한..

좋은 시 2022.03.01

분갈이/박지현

분갈이 박지현 꽃 시장 난전에 핀 울긋불긋 봄꽃들이 지나가는 사람들 발길을 묶어둔 분갈이 흙 알갱이들 묵은 내가 알싸하다 뿌리 털어 걸러낸 겨우살이 몸살도 요리조리 햇볕에 골고루 버무린다 목울대 깊은 곳에서 쏟아지는 그을음들 못다 걸은 걸음들 한쪽으로 긁어내고 뒤쳐진 걸음들은 중심으로 앉힌다. 알뿌리 정토淨土의 봄날 물관부가 툭 터진다 - 출처 조선일보 가슴으로 읽는 시조. 봄꽃들이 예서 제서 난전을 차리고 있다. 그 꽃들 늘어놓고 사람들도 봄의 난전을 열고 있다. 어디서나 새로 핀 오밀조밀 화분들이 지나는 발길을 잡아챈다. 화분 하나만 바꿔도 봄이 밀려들어 오니 이참에 분갈이나 해보자고 꽃 고르는 손도 분주하다. 꽃들은 '저요, 저요'필요 없이 웃기만 잘하면 새 분으로 옮겨진다. 묵은내 털어내고 새로 ..

좋은 시 2022.02.28

잠시, 천 년이/김현

잠시, 천 년이 김현 잠시, 천년이 우리가 어느 생에서 만나고 헤어 졌기에 너는 오지도 않고 이미다녀 갓나 등나무 의자에 앉아 잠시, 천 년이 지난다 김현 1946 출처 조선일보 가슴으로 읽는시 깊을 대로 깊은 가을, 저무는 단풍들이 도심 고샅까지 뒤흔들며 가고 있다. 꽃보다 뜨겁게 타오르던 만산홍엽도 이제 떠나는 몸짓으로 스산하다. 앙상한 뼈대 같은 나뭇가지들만 전열을 가다듬듯 결연한 자세로 찬 바람을 맞는다. 그 사이로 아직 남아 있는 단풍 끝물이며 마른 풀잎들이 바람을 붙잡다 놓치다 몸부림을 친다. 미련 같은, 회한 같은 쓸쓸함 속으로 미처 불태우지 못한 채 입동을 맞은 어물쩍 단풍의 당혹감 같은 게 스친다. 항상 그랬던가. 하고 보면 뭔가 늘 놓치거나 뒤늦게 허둥대는 회한 따위를 더 많이 끼고 왔..

좋은 시 2022.02.28

우렁각시를 찾아서/신성애

우렁각시를 찾아서 신성애 검은 비닐봉지를 든 한 노인이 들어선다. 희끄무레한 피부에 군데군데 검버섯이 피었고 머리에는 낡은 베레모를 눌러썼다. 모자를 벗으니 드러난 머리카락은 얼룩덜룩 제멋대로 자라있다. 목덜미를 덮도록 뒷머리는 덥수룩하고 귀 옆머리는 유난히 짧다. 면도날로 집에서 노인이 직접 밀었다는 옆 머리카락은 짝짝이다. 이발을 하고 싶다는 노인이 베레모를 다시 쓰고서 뒷머리를 만지며 거울 앞에 선다. “미용사 양반, 삐어져 나온 머리를 얄브리하게 잘라주구려. 내사 암만해도 잘 안되는기라.” 머뭇머뭇 말을 건네고도 웬일인지, 노인은 의자에 앉을 생각을 않으신다. 나는 영문을 몰라 돌아선 노인의 다음 동작을 기다리며 애꿎은 거울만 문지르며 서있다. 노인은 소파에 놓아둔 검은 비닐 봉지를 집어들더니 나..

좋은 수필 2022.02.28

도침(搗砧) / 우광미

도침(搗砧) / 우광미 ​ ​ 해가 기울자 바깥은 마치 도량처럼 정(靜)하다. 가을공기에 풀벌레 소리는 더욱 또렷이 들린다. 이런 적막을 깨고 방문 너머 무언가 문살에 부딪히는 소리가 난다. 다닥, 엷은 인기척 같아 방문을 열었다. 아무도 없다. 불빛을 향해 저돌적인 비행을 하던 하루살이와 나방들만 툇마루에 널브러져 있다. 불을 끄자 잠시 풀벌레소리가 약해지는가 싶더니 방안엔 어둠이 내리고 어둠이 짙었던 바깥은 달빛으로 환하다. 창호지 너머로 들어오는 달빛은 내 영의 불빛을 환히 밝혀주는 듯하다. 일상에서 벗어나 또 다른 세계로 들어선 것만 같다. 내 안 욕망의 불을 내리면 이렇듯 환한 빛을 볼 수 있을까. 이 빛은 절로 나의 내면으로 들어와 지난 시간의 궤적을 찾아 나선다. 빛은 맨살의 한지를 넘어 들..

좋은 수필 2022.02.26

고영민 시인의 시작 방법

고영민 시인의 시작 방법 1. 자기의 핵심역량을 찾아라! - 누구나 가장 잘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걸 찾으면 됩니다. 남을 따라하면 절대 최선을 다해도 최고가 될 수 없습니다. 내가 가장 잘 하는, 잘 쓸 수 있는 것이 뭔지를 찾아야 합니다. 자기와 맞는 글쓰기를 찾으세요! 거북이와 토끼가 경주를 합니다. 산에서 경주를 하면 백이면 백, 토끼가 이깁니다. 거북이가 이기는 방법은 바다에서 경주를 하는 것입니다. 내가 토끼인지, 거북이인지 먼저 판단을 해야 합니다. 바다로 갈지 산으로 갈지 판단해야 합니다. 내가 잘 할 수 있는 글쓰기를 하세요! 그걸 찾는 것이 우선입니다. 앵두 / 고영민 그녀가 스쿠터를 타고 왔네 빨간 화이바를 쓰고 왔네 그녀의 스쿠터 소리는 부릉부릉 조르는 것 같고, 투정을 부리는 것 ..

평론 2022.02.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