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향기

문향이 넘나드는 선방입니다

2024/10/20 2

봄 편지 / 박금아

봄 편지 / 박금아​"어느 날, 종가댁 맏며느리 같은 분이 다가와 삼 년 동안 일 천여 통의 편지로 저를 붙잡아 앉혔습니다."*지인이 보내온 수필집의 서문을 읽다가 이런 문구를 발견했다. 수신인과 발신인 사이에는 어떤 사연이 있을까 궁금해지면서 1천 통의 편지를 주고받은 인연이 부러웠다. 문득 지난 한 해 동안 하루에도 몇 번씩 내 속을 드나들던 손 편지 한 장이 생각났다.몇 번이나 미룬 끝에 이루어진 만남이었다. 매번 그쪽에서 날짜를 잡았고, 취소한 쪽은 나였다. 후일 연락하겠다고 해놓고도 하지 않았다. 손주를 돌보느라 시간을 내기도 어려웠지만, 나에게 진 빚을 갚아야 한다는 말이 부담스러웠다. 그런데 그날은 일방적으로 시간과 장소를 알려왔다.그녀는 점심을 주문해 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나를 보자 당신..

좋은 수필 2024.10.20

도미의 장례/서*연

도미의 장례    도미의 몸통이 눈부시다. 접시 바닥의 무늬가 그대로 내비칠 만큼 도미는 얇게 회 처져 있다. 드문드문 젓가락질이 오가며 도미의 살점이 한 점 한 점 사라져 간다. 비릿한 물방울을 사방으로 튕기며 파닥이던 도미의 꼬리는 점차 움직임이 느려진다. 그렁그렁, 연한 소금기를 머금고 껌뻑이던 도미의 눈알이 출렁, 하고 터진다. 검은 먹물이 도미의 망막을 시커멓게 뒤덮는다.  도미의 부레는 이미 부패를 시작했다. 혹처럼 부풀어 오른 부레에는 비상 같은 청록색 반점이 돋는다. 그러나 도미는 끝까지 목숨을 놓지 않으려 한다. 다물어지는 아가미를 필사적으로 뻐끔거리며 도미는 숨을 몰아쉰다. 숨 가쁜 도미는 사해의 부력으로 금방이라도 떠오를 것만 같다. 아가미는 산소를 넣고 금방이라도 눈부시게 일어날 것..

좋은 수필 2024.1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