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향기

문향이 넘나드는 선방입니다

2024/10/31 2

향내 품은 툇마루 / 김순경

향내 품은 툇마루 / 김순경        좁고 가파른 길이 산속을 파고든다. 어둠이 사라지자 치열하고 분주했던 숲속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조용하기만 하다. 촌부의 손등처럼 거친 껍질의 소나무들도 깊은 잠에 빠진 듯 서로 엉켜 있다. 산허리를 돌 때마다 마주치는 구불구불한 계곡 길이 묵혀두었던 숲의 사연들을 토해낸다.  마지막 능선을 넘어서자 멀리 기와지붕 용마루가 나타난다. 산줄기가 감싸고 있는 양지바른 곳이라 온종일 햇살이 머무는 아늑한 지형이다. 큰 절이 있었던 넓은 빈터에는 기와집 몇 채만 흩어져 있고, 작은 연지에는 누렇게 말라버린 연꽃 줄기들이 화려했던 지난여름을 말하는 듯 얼음을 뚫고 솟아있다. 개목사開目寺를 제대로 찾아왔다.  원래는 흥국사였다. 통일신라 초기에 세워진 절이다. 의상대사..

좋은 수필 2024.10.31

따슴물에 잠기다 / 하인혜

따슴물에 잠기다 / 하인혜 행복한 ​따슴물에 잠기다 / 하인혜   구순(九旬)이 넘은 엄마가 사는 곳은 남향받이로, 좁다란 베란다에는 누룽지 같은 볕내음이 고여 있다. 고물거리는 다육이의 숨결조차 달뜬 냄새를 더한다. 실과 시간에 처음 들어가 보았던 온실 같은 곳에서 엄마가 그려내는 동선은 지극한 곡선이다. 볕이 데운 물을 가까이에 두고 오가는 움직임이 자늑하다. 지난 겨울부터 다독였던 잔조롬한 시래기 두름을 거두고 물갈이하며 밭은 숨을 내쉰다. 해 질 녘이면 따슴물이 담긴 대야에 두 발을 넣고 앉아 있는 모습은 정물화의 소품처럼 적요하다. 엄마는 햇볕이 데운 물을 따슴물이라 불렀다. 우리 가족에게는 익숙한 호칭인데 따듯한 물이 맞는 말이다. 필요에 의해 급하게 데워낸 물이 아닌 손을 넣으면 온기를 느낄..

좋은 수필 2024.10.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