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향기

문향이 넘나드는 선방입니다

2024/10/03 2

밥 / 허창옥

밥 / 허창옥  압력밥솥 밸브가 돌아간다. 똑똑해 빠진 밥솥이 말을 한다. “증기가 빠져나오니 주의하세요.” 잠시 쉬었다가 다시 말한다. “맛있는 밥이 완성되었으니 밥을 저어주세요.” 그래요, 잘 저어서 먹겠습니다. 먹고 사는 일이 고맙다. 삶의 무거운 등짐도, 온갖 근심도 궁극적으로는 밥을 향해 있다. 밥 덕분에 살고 밥 때문에 싸우고 밥을 못 먹어서 죽는다. 짧지 않은 세월을 살면서 죽음에 직면한 혈육과 친지들을 보아왔다. 대개는 질병 때문이다. 질병이 몸을 침범하고 악전 끝에 죽음에 이르게 된다. “곡기를 끊었다.” 란 말을 이따금 들었다. 곡기를 끊는 것, 그건 마지막에 임박했음을 알리는 것이다. 밥을 먹을 수 있다는 건 그러니까 복된 일이다. 그것은 살아있다는 것이고 살아있음은 그게 어떤 상황이..

좋은 수필 2024.10.03

꽃 접接, 그 신작 쓰기/염귀순

꽃 접接, 그 신작 쓰기/염귀순   색깔 고운 시간이다. 홍매화, 종잡을 수 없는 사람 마음처럼 애매한 날씨의 이른 삼월에 잎보다 먼저 깨어난 꽃. 뭇 봄꽃들이 다투어 피기 전에 서둘러 봄을 점령하고 이내 물러나는 꽃. 섬진강 둔치의 홍매화가 봄 표지판인 양 반가운 여자는 꽃 보러 길을 나섰다. 아직도 봄꿈을 꾸시는가.   지금, 여기, 봄. 세상사에 끌려다닌 사람들에게 꽃은 못다 피운 꿈이든 조물주의 위로이든 딴 세상을 펼친다. 강을 끼고 접어든 광양 매화마을은 부신 꽃 누리다. 잔잔한 들녘과 언덕을 휘도는 흰 빛도 황홀한 하루 치의 무릉도원, 말간 언어들 사이로 막 봄을 열고 나온 홍매화가 난연한 문장을 긋는다. 내 생에도 저런 빛깔 남아있을지, 척박한 터전에 봄 하나 접붙여 볼 마음으로 견주고 따지..

좋은 수필 2024.1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