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 허창옥 압력밥솥 밸브가 돌아간다. 똑똑해 빠진 밥솥이 말을 한다. “증기가 빠져나오니 주의하세요.” 잠시 쉬었다가 다시 말한다. “맛있는 밥이 완성되었으니 밥을 저어주세요.” 그래요, 잘 저어서 먹겠습니다. 먹고 사는 일이 고맙다. 삶의 무거운 등짐도, 온갖 근심도 궁극적으로는 밥을 향해 있다. 밥 덕분에 살고 밥 때문에 싸우고 밥을 못 먹어서 죽는다. 짧지 않은 세월을 살면서 죽음에 직면한 혈육과 친지들을 보아왔다. 대개는 질병 때문이다. 질병이 몸을 침범하고 악전 끝에 죽음에 이르게 된다. “곡기를 끊었다.” 란 말을 이따금 들었다. 곡기를 끊는 것, 그건 마지막에 임박했음을 알리는 것이다. 밥을 먹을 수 있다는 건 그러니까 복된 일이다. 그것은 살아있다는 것이고 살아있음은 그게 어떤 상황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