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끝에 선 어미 호박꽃 / 김영수. 21. 4:00 세상 끝에 선 어미 호박꽃 / 김영수 한여름 뒷마당 텃밭은 평화로웠다. 그 평화로움 속에는 보이지 않게 변하는 것들이 있었다. 깻잎을 솎아내고 있을 때, 큰 이파리에 가려 안 보이던 연둣빛 호박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내 엄지손가락보다 조금 굵을까. 며칠 못 본 사이에 호박꽃을 밀어내고 꼭지를 차지한, 갓 태어난 호박일 터였다. 새 생명의 출현이 반가워 작은 탄성을 지르려는 순간, 누렇게 시든 호박꽃에 눈길이 잡혔다. 호박이라는 결실을 얻으려고 모든 기운을 소진하여 지친 듯, 꽃은 제자리마저 내주고 호박 끄트머리에 겨우 매달려 있었다. 제 임무를 다한 꽃은 몸을 오그려 닫아걸었고 관능의 유열을 나누던 여름 볕은 홀로 뜨거웠다. 일주일 전만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