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 바람 / 김희숙 지내들녘이 들썩이는구려. 축제를 연다기에 기다리고 있었소. 가만 보니 여인들이 며칠 전부터 분주히 오갑디다. 노란머리 콩나물은 길쭉한 몸통을 탱탱하게 삶고 갈색 금고사리는 들기름 듬뿍 부어 버무렸소. 채 썬 당근은 윤기 나는 주황빛 살려 볶아내더니 푸른 봄빛 머금은 취나물과 시금치를 무쳐 보리밥 위로 줄 세웁디다. 계란 지단까지 얹으니 고명들이 저마다의 빛깔을 뽐내는구려. 비빔 솥이 꽃수를 놓은 듯 참으로 곱소. 어른 열댓 명이 둘러서야 비벼질 양이니 오신 분들은 넉넉히 드시오. 오월의 보리논이오. 초록 옷을 벗는 중이라 때깔이 썩 산뜻하진 않소. 까끄라기 수염은 더욱 뻣뻣해져 어린 아이 살갗이라도 스칠까 염려되오. 그래도 사진을 찍겠다는 사람들이 몰려오는구려. 고흐의 밀밭 그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