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향기

문향이 넘나드는 선방입니다

2024/04/29 2

대포항 근황 / 고창환

대포항 근황 / 고창환 ​​ 청봉보다 높은 파도가 허리를 편다 발이 묶인 목선이 목을 빼고 바라보는 설악은 가을비에 맨몸으로 잠겨 있다 긴 여행에서 돌아와 정박중인 갈매기들이 저녁 하늘에 부리를 꽂고 끼룩끼룩 부푼 모험담을 풀어놓는데 횟집 좌판에서 비린 바람이 뼈째 썰린다 여기 퍼질러 앉아 쥐치나 씹으며 막소주 한 사발에 취해볼거나 할말이 많은 듯 입술을 들썩이는 불빛 몇 개가 바다로 떨어진다 막무가내 파도는 삼킬 것을 찾아 빗발에 젖은 목젖을 세우지만 오늘은 횟감처럼 가련한 삶에 지친 사람들이 모여드는 대포항 저물 무렵 청봉은 말없이 뿌리까지 젖는다 빗발은 미시령에서 폭설로 차오르고 희뿌연 늦가을 설악이 지워질 듯 어둠이 바다에서 느리게 걸어온다 이제 산길 뱃길 모든 소식이 끊기고 나면 모두가 한 마리..

좋은 시 2024.04.29

기웃 둥한 어깨 / 이재무

기웃 둥한 어깨 / 이재무  ​​한쪽으로 형편없이 기운 어깨가달팽이 걸음으로 계단을 오르고 있다저 기울기는 시대의 풍속과 간난의 세월이 만든 것들끓다 솟구쳐 오르는 불온한 피몸의 제방이 되어 막아왔을 어깨시간에 단련될수록 각질은 두꺼워진다어깨는 적응 혹은 순응의 표상그러나 큰 울음의 발동기 돌릴 때는눈코입보다 먼저 시동이 걸리는 어깨봐라, 저게 저 사람의 전력이다질통, 책보, 따블백, 배낭, 가방 등속 메지는 동안파인 홈과 돌출한 뼈추 잃은 저울인 냥 기웃 둥한 생수평을 잃은 높이는 때로 얼마나 불편하고 불안한가반원으로 둥글게 몸을 만 사내가계단 층층에 숨을 질질 흘리며 오르고 있다

좋은 시 2024.04.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