볶은 콩
마경덕
날콩을 볶는다
비린 피가 고소해지도록
요리조리 빠져나가는 콩, 뜨거운 냄비를 주걱으로 휘저어도
아직 비리다
타닥타닥 튀어오른다
콩의 말을 한 번도 배운 적 없어
참 다행이다
내가 아는 말은
도르르, 콩콩, 데굴데굴, 겨우 그 정도
어머니가 일러준 대로
흩어지지 않게 자루에 넣거나 봉지에 담는 정도
둘러앉아 콩이 죽기만을 기다리는 아이들
콩 한 줌에 벌어지는 입들
고소한 피 냄새가 거실까지 날아간다
콩대는 콩잎을, 콩잎은 꽃을 피워
방방마다 콩을 낳고
꼬투리 꼭 닫아건
콩, 오늘 내 손에 죽었다
콩의 말을 알지 못해 참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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