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나물 촌감(寸感)/허정진 말아 쥔 악보 속에 높은 음표들이 유희한다. 슬픔을 날것 그대로 토해내는 비탈리 ‘샤콘느’의 음계며 선율일까. 의뭉스러운 삶의 비정을 맛본 느낌표와 의문형의 기호들이 세상 앞에 단독자처럼 버티고 있다. 아니다. 잎도 없이 연둣빛 꽃망울을 머리에 이고 올라온 석산 꽃대공들이다. 미끈하고 탄력적이며 날렵한 몸태.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나체 그대로이다. 건강에 좋다며 지인이 재배한 까만 쥐눈이콩을 선물 받았다. 크기는 좁쌀만 하지만 오동통하고 앙증맞은 모습이다. 콩나물 기르는 일은 남자도 할 수 있다고 부추겼다. 혼자만의 살림에 항아리 들여놓기도 부담스러워 투명한 페트병을 이용해 조그만 시루 두 개를 만들었다. 성장기는 일여드레, 일차를 두고 기르면 사나흘에 한 번꼴로 콩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