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향기

문향이 넘나드는 선방입니다

전체 글 1898

콩나물 촌감(寸感)/허정진

콩나물 촌감(寸感)/허정진 ​ 말아 쥔 악보 속에 높은 음표들이 유희한다. 슬픔을 날것 그대로 토해내는 비탈리 ‘샤콘느’의 음계며 선율일까. 의뭉스러운 삶의 비정을 맛본 느낌표와 의문형의 기호들이 세상 앞에 단독자처럼 버티고 있다. 아니다. 잎도 없이 연둣빛 꽃망울을 머리에 이고 올라온 석산 꽃대공들이다. 미끈하고 탄력적이며 날렵한 몸태.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나체 그대로이다. 건강에 좋다며 지인이 재배한 까만 쥐눈이콩을 선물 받았다. 크기는 좁쌀만 하지만 오동통하고 앙증맞은 모습이다. 콩나물 기르는 일은 남자도 할 수 있다고 부추겼다. 혼자만의 살림에 항아리 들여놓기도 부담스러워 투명한 페트병을 이용해 조그만 시루 두 개를 만들었다. 성장기는 일여드레, 일차를 두고 기르면 사나흘에 한 번꼴로 콩나..

좋은 수필 2023.09.08

태양초/김동임

태양초 김동임 시인 물고추를 한소쿠리 따와 멍석에 넌다 맵고 아린 햇살을 안으로 안으로 굴린다 굴리고 굴리고 굴리고••••아홉번을 굴리고 드디어 단아하다 한데 외형은 멀쩡해도 벌레에 상처를 입고 맥 못 추는 녀석이 많다 작심하고 덤비는데 힘을 사용했나 보다 장군만한 체구가 터득한 미는법, 굴리는 법을 익히지 못했나 보다 어쩌랴, 그래도 나는 버릴 수가 없어 속을 훑어 다시 넌다

좋은 시 2023.09.08

두부에 대하여/이재무

두부에 대하여 ​ 두부가 둥그런 원이 아니고 각이 진 네모인 까닭은 네모가 아니라면 형태를 간직할 수 없기 때문 저 흔한 네모들은 물러 터진 속성을 감추기 위한 허세다 언제든 흐물흐물 무너질 수 있는 네모 너무 쉽게 형태를 바꿀 수 있는 네모 가까스로 네모를 유지한 채 행여 깨질까 조심스러운 네모 제가 본래 단단하고 둥근 출신이라는 것을 까맣게 잊어버린 네모 우스꽝스러운, 장난 같은 네모 지가 진짜 네모인 줄 아는 네모 언제든 처참하게 으깨어질 수 있는 네모 둘러보면 그런 두부 같은 네모들이 얼마나 많은가​​ ​ ​ ​ 다시 두부에 대하여 ​ 형기 마친 죄수가 감옥 나설 때 왜 두부를 먹이는지 알겠다. 두부는 칼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두부는 저항을 모른다. 저를 베고 찌르는 칼, 연한 살로 감싸는 두부는..

좋은 시 2023.09.08

첫날/권희돈

첫날 오늘은 그대 남은 날들의 첫날 부디 지난 날의 회한에 물들지 마오 추억은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눈꽃 결코 잡히지 않는, 내일을 근심치 마오 희망은 숨어 있는 것 다가서면 멀어지는 신기루 추억은 깃털에 묻고 희망은 별빛에 묻고 밤 새워 한뎃잠을 자고 나온 아침까치처럼 겁도 없이 인간에 내려앉는 저 황홀한 가벼움을 오늘도 반가로이 맞이하시라 오오, 오늘은 그대 남은 날들의 첫날 휴지 더럽다고 함부로 버리지 마라 더러움의 그 근원을 생각하라 안으로 들어가던 모든 순수가 더러움으로 나오는 까닭은 헤아려라 더럽다고 함부로 짓밟지 마라 너희가 걸어온 길을 돌아보라 눈물 한 방울 나누어 준 적이 있느냐 피 한 방울 나누어 준 적이 있느냐 보아라, 하늘에 뜻을 세운 저 순백의 침묵을 탐욕에 물들지 아니하고 유..

좋은 시 2023.09.07

모과의 건축학/홍계숙

모과의 건축학 홍계숙 봄이 푸른 모닥불을 지피면 잎새 사이 타닥타닥 피어나는 분홍 꽃잎들 이때쯤 나무는 허공의 각도를 측량하고 집짓기를 서두른다 설계 도면을 펼쳐 시작되는 공사 봄이 낙화한 자리에 풋열매로 주춧돌을 놓고 나뭇가지 사이사이 창을 내고 따가운 햇살을 넉넉히 들여놓는다 천둥과 비바람의 외장재, 속으로 삭힌 시고 떫은 시간들과 기나긴 장마를 말려 빚은 내장재로 둥근 집을 완성하는 모과나무 건축가 가장 먼저인 것은 내부의 견고함이다 내벽에 조밀한 향기를 바를 때쯤 건축감리사인 가을이 다녀간다 예리한 눈길을 통과한 둥근 집 꼿꼿이 받아낸 고통의 표면은 울퉁불퉁하고 노란 벽에 배어난 땀방울 진득하다 계절의 모닥불이 사위어가면 찬바람이 바삐 가지를 드나들고 모과는 집 한 채 완성하고 쿵, 나무를 떠나간다

좋은 시 2023.09.07

그리운 댓바람소리 - 김경윤

♧ 그리운 댓바람소리 - 김경윤 - 김남주시인 생가에서 쓸쓸한 마음 달랠 길 없는 날이면 뜨거운 누군가의 목소리가 그리워 봉학리 남주형 집에 간다 덕종이형은 또 어느 집회에 갔는지 빈집처럼 고적한 마당귀 장독대에 쑥부쟁이만 우북하다 그늘 깊은 뒤란에는 살아생전 시인의 죽창이 되고 서슬 푸른 칼날이 되었던 청대나무와 조선솔이 여즉도 푸른 날을 세우고 있다 한때 군불을 지피며 하이네와 네루다를 읽었다던 그러나 지금은 곰팡내 나는 행랑채 빈방에서 늙은 농부의 축 처진 뱃가죽처럼 너덜거리는 흙벽을 마주하고 앉아 청송녹죽(靑松綠竹) 가슴에 꽂히는* 그러나 이제는 아무도 부르지 않는 그 노래를 홀로 불러본다 어두운 골방에서 제 핏줄 같은 실을 뽑아 집을 짓는 거미처럼 혼신의 노래를 부르던 순결한 그 사내들은 다 어..

좋은 시 2023.09.06

불의 경전을 읽다/김경윤

불의 경전을 읽다 김경윤 ​ ​ 누가 한사코 이 먼 이국까지 와서 내 슬픔의 창을 두드리는가 나는 단지 별을 찾아왔을 뿐인데 낭만을 선사한다는 몽골의 별빛 때문에 누추한 게르의 밤을 허락했는데 밤이 깊을수록 바람의 신이 데려간 잠은 좀처럼 오지 않는다 영하 40도 눈 내리는 자작나무 숲에서는 바람의 악사들이 켜는 모린호르의 노래 게르의 천창으로 쏟아지는 눈송이들 눈물이 되어 불꽃을 적신다 난로의 연통에 불꽃만 날고 연기가 보이지 않는다 불꽃이 날리는 것은 난로에 장작이 없다는 것 게르에서 겨울밤을 보내본 사람이면 누구나 알지 마음에 불꽃이 없으면 언어는 단지 연기 같은 것 따뜻한 불을 지필 장작 같은 말 한마디 그리운 밤 바람의 신을 추종하는 연기가 허공에 새긴 만자卍字들 밤새 마음에 새기며 타닥타닥 장..

좋은 시 2023.09.06

바다로 간 인어 공주 / 문춘희

바다로 간 인어 공주 / 문춘희 ​ 인어 공주는 마녀를 찾아갔어요. "이 꼬리 대신 다리를 갖게 해 주세요." "그러면 네 아름다운 목소리를 내게 주어야 한다. 만약 왕자와 결혼하지 못하면 죽어서 거품이 되고 말아. 그래도 좋으냐?" "네, 왕자님만 볼 수 있다면……." 여기까지 읽었는데도 아들은 아무런 반응이 없다. 쌔근쌔근 잠이 들어 있었다. 유치원생인 막내가 작은 사고로 집 근처에 있는 정형외과에 입원한 지 열흘이 넘었다. 그동안 움직이지 못하는 아들의 침대 머리맡에서 동화책을 수십 권도 넘게 읽어 주느라 나는 동화구연가가 다 되었다. 곤히 잠든 아들에게 이불 자락을 덮어 주고 병원 복도로 나와 자판기 커피를 한 잔 마신다. 온갖 약품 냄새와 신열로 들뜬 신음 소리가 밤새 뒤섞여 굴러다니는 병실 공..

좋은 수필 2023.09.03

상자 / 문춘희

상자 / 문춘희 ​ 아이들과 남편이 학교로 일터로 모두 떠나고 난 아침은 세상이 텅 빈 것 같다. 상자의 내용물이 상자를 버리듯 나는 남겨졌다. 매일 아침 치러야 하는 잠시 동안의 이별이요 반복되는 일상임에도 아직도 적응하지 못하고 있다. 속을 다 비워 버린 상자 같은 내 안은 언제쯤 다시 채워질 수 있을까? 아파트 안에 우두커니 앉아 있으면 마치 내가 알 수 없는 큰 상자 안에 갇힌 것만 같다. 큰 상자 안에 갇힌 작은 상자가 된 나를 들여다본다. 상자엔 아무것도 담겨져 있지 않다. 한때 무엇을 담았던 것인지도 생각나지 않는다. 나는 이제 아무것도 담을 수 없는 상자가 된 것일까? 책상에 앉아 멍하니 창밖을 바라본다. 막다른 골목길처럼 컴컴하고 오래 입은 옷처럼 후줄근해진 상자 속으로 을씨년스런 바람 ..

좋은 수필 2023.09.03

풍선 / 문춘희

풍선 / 문춘희 ​ 풍선을 한 묶음 샀다. 여러 가지 색깔의 풍선들이 가득 들어있다. 그것을 꺼내 하나씩 분다. “푸-우, 푸-후훕, 푸푸-훕.” 노랑 풍선, 파랑 풍선, 빨강 풍선들이 거실 천장으로 쑥 날아오르는 것을 바라본다. 종종 혼자서 풍선을 분다. 남들은 참 이상한 버릇이라고 여길 수도 있겠지만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 뭉게뭉게 부풀어 올라 가슴이 먹먹해져 오면 풍선을 분다. 왠지 모를 불안감이 물밀듯이 밀려와 숨이 가빠져 올 때엔 더 빨리 풍선을 분다. 풍선을 불면 숨이 가빠지는 증상이 많이 잦아들고 무언지 모를 불안감도 줄어든다. 겨울바람이 웅웅웅 소리를 지르며 달려들어 창문을 몹시도 할퀴던 수 해 전 겨울, 병원에 누워있었다. 퀴퀴한 약품 냄새가 나는 병실에 누워 가혹하게 불어대는 바람 소리..

좋은 수필 2023.09.03

서울로 가는 전봉준/안도현

서울로 가는 전봉준 안도현 눈 내리는 만경 들 건너가네 해진 짚신에 상투 하나 떠 가네 가는 길 그리운 이 아무도 없네 녹두꽃 자지러지게 피면 돌아올거나 울며 울지 않으며 가는 우리 봉준이 풀잎들이 북향하여 일제히 성긴 머리를 푸네 그 누가 알기나 하리 처음에는 우리 모두 이름 없는 들꽃이었더니 들꽃 중에서도 저 하늘 보기 두려워 그늘 깊은 땅속으로 젖은 발 내리고 싶어하던 잔뿌리였더니 그대 떠나기 전에 우리는 목 쉰 그대의 칼집도 찾아주지 못하고 조선 호랑이처럼 모여 울어주지도 못하였네 그보다도 더운 국밥 한 그릇 말아주지 못하였네 못다 한 그 사랑 원망이라도 하듯 속절없이 눈발은 그치지 않고 한 자 세 치 눈 쌓이는 소리까지 들려오나니 그 누가 알기나 하리 겨울이라 꽁꽁 숨어 우는 우리나라 풀뿌리들이..

좋은 시 2023.09.03

길마/김순경

​ ​ 길마 ​ 김순경 ​ 앙상한 뼈대만 남아 있다. 등신불이 되어버린 듯 미동도 없다. 질곡의 세월을 견뎌낸 길마는 일어날 기력조차 없어 보인다. 한때는 쇠등을 타고 산과 들을 누볐지만 지금은 한 발짝도 움직일 수 없는 몸이 되었다. 소도 사람도 떠나고 없는 빈집을 상주처럼 홀로 지킨다. 길마는 쇠등에 얹는 운반도구이다. 말굽같이 굽은 두개의 나무를 연결해 말안장처럼 만든다. 등에 착 달라붙도록 안쪽에 가마니나 천을 덧댄 길마는 실린 짐이 떨어지지 않도록 배와 궁둥이에 단단히 묶는다. 짐의 균형을 잡아주기도 하지만 긁히거나 찔리지 않게 보호하는 역할도 한다. 안장이 있어야 제대로 말을 탈 수 있듯이 길마가 있어야 짐을 싣거나 달구지를 끌 수 있다. 한번 등에 올라온 길마는 쉽게 내려가지 않는다. 자신의..

좋은 수필 2023.08.23

귀소 / 고경서(고경숙)

귀소 / 고경서(고경숙) 기왓장 사이로 솟을대문이 보인다. 처마도 마른 속을 드러내며 삭아 내리는 중이다. 부와 권력의 상징이었던 높은 담벼락 위로 시든 풀만 흐느적거린다. 지키고 감출 것이 그렇게 많았을까. 돌담을 겹쳐 두른 중문을 지나면 귀면와가 두 눈을 부라리며 허공을 노려보고 있다. 안채와 사랑채, 곳간과 행랑채가 일가를 이루고 일찌감치 풍화에 들었다. 창살문 하나에도 꼼꼼하게 치장을 하고, 대청난간을 기어오르는 당초덩굴을 안으로 깊게 파 궁굴린 솜씨가 섬세하고 미려하다. 세월을 탁마한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어 지난날 융성하던 가문의 권세를 다시 보는 듯하다. 지리산 가는 길에 팻말을 보고 찾아 든 집이다. 주인 떠난 집을 말없이 지키던 담장을 돌아 유유히 고샅길을 빠져나가는 바람까지도 고색이 짙..

좋은 수필 2023.08.20

싸리비/이정연

싸리비/이정연 봄에는 싸리비 꽃잎을 쓸고 여름엔 싸리비 빗물을 쓸고 가을엔 싸리비 낙엽을 쓸고 겨울엔 싸리비 흰눈을 쓸고 단순한 노랫말 속에 고향집 마당의 사계가 추억 속의 영화처럼 펼쳐지고 나는 어느새 자신감으로 충만해진다. 어릴 적 싸리비 하나를 만들어 마당을 쓸었던 일로 인해 아버지가 나를 완전히 인정해 주신 일 때문이다. 고향집에는 온갖 빗자루가 많았다. 섬세해서 방 쓸기에 좋은 갈비, 타작마당의 낟알을 한 톨도 흘려보내지 않던 알뜰한 수수비, 가을마당의 마른 감잎과 함께 쓸쓸함을 쓸던 시누대비나 싸리비는 늘 나를 고향으로 오라 돌아오라 손짓한다. 한가위를 앞둔 어느 날 시누대비로 마당을 쓸던 나는 비질에 자꾸 파이는 마당도 거슬렸지만 백 평 남짓한 마당을 다 쓸기에 비가 너무 닳았다는 생각이 들..

좋은 수필 2023.08.19

발톱 / 조미정

발톱 / 조미정 발톱이 못생겼다. 세월에 풍화되어 바위만 남은 봉우리가 발가락 끝마다 하나씩 뭉텅 솟았다. 크기마저 제각각인 오합지졸이다. 발이 몸의 뿌리이고 발가락이 지렛대라면 발톱의 역할은 무엇일까. 무생물 닮은 발톱이다. 발의 한 부분이면서도 변변한 뼛조각 하나 나누어 갖지 못했다. 오로지 죽은 세포로만 툽툽한 옷을 만들어 입었다. 둥글넓적하니 인상 좋아 보이지만 사자처럼 포효하거나 독수리처럼 낚아채는 맛은 없다. 말발굽처럼 두툼하기만 해도 좋으련만 피부의 혈색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발톱은 멀겋다 못해 파리하다. 케라틴이라는 성분이 조갑근에서 처음 만들어질 때는 젤리처럼 말랑말랑하다. 표피 밖으로 돋아나오면 갑각류의 껍데기처럼 단단해진다. 몸의 가장 낮은 곳에 발을 구겨 넣고 바닥과 맞붙어 싸우려면 ..

좋은 수필 2023.08.19

남두육성 / 조미정

남두육성 / 조미정 산방에 올라 별의 일주운동을 찍는다. 카메라 조리개를 활짝 열어 놓고 연달아 자동 셔터를 눌러댄다. 하늘 전체가 둥글게 펼쳐진 우산 속 같다. 지구 자전축이 회전하면 주변의 천체들도 덩달아 뱅그르르 동심원을 그린다. 북극성 가까이 머문 별들은 황소걸음으로 걷고, 멀리 떨어진 별들은 앙가발이 걸음으로 달려간다. 그 중에서 별자리 하나가 유난히 시선을 끈다. 남두육성은 은하수 남쪽 끝에 국자 모양으로 엎어져 있다. 북두칠성과는 모습이 비슷한 듯 사뭇 다르다. 별의 개수가 하나 모자란 여섯이고 국자 부분도 찌그러졌다. 크기가 작으며 더 어둡다. 짝퉁 별자리라서 구석으로 내몰렸을까? 행색이 남루하여 무대에 오를 만한 자신감이 부족했을까? 사시사철 하늘 높이 붙박인 북두칠성과 달리 남두육성은 ..

좋은 수필 2023.08.19

유안진 . 안동(安東)

유안진 . 안동(安東) 어제의 햇빛으로 오늘이 익는 여기는 안동 과거로서 현재를 대접하는 곳 서릿발 붓끝이 제 몫을 알아 염치가 법규를 앞서던 곳 옛 진실에 너무 집착하느라 새 진실에는 낭패하기 일쑤긴 하지만 불편한 옛것들도 편하게 섬겨가며 참말로 저마다 제 몫을 하는 곳 눈비도 글 읽듯이 내려오시며 바람도 한 수 읊어 지나가시고 동네 개들 덩달아 댓 귀 받듯 짖는 소리 아직도 안동이라 마지막 자존심 왜 아니겠는가.

좋은 시 2023.08.19

울고 싶은 마음/박소란

울고 싶은 마음 박소란 그러나 울지 않는 마음 버스가 오면 버스를 타고 버스에 앉아 울지 않는 마음 창밖을 내다보는 마음 흐려진 간판들을 접어 꾹꾹 눌러 담는 마음 마음은 남은 서랍이 없겠다 없겠다 없는 마음 비가 오면 비가 오고 버스는 언제나 알 수 없는 곳에 나를 놓아두는 것 나는 다만 기다리는 것 (하략) ―박소란(1981∼ ) 그 사람 왜 좋아하냐 물어보면 대답을 할 수가 없다. 좋은 데에는 이유가 없다. 어느 순간 ‘아!’ 하고 좋아지는 거다. 박소란 시인의 작품은 그렇게 좋아지는 시다. 잔잔하게 다가와 오래 수런거리는 시. 첫 시집 제목처럼 ‘심장에 가까운 말’의 시. 이런 시를 좋아하신다면 박소란 시인이 정답이다. 나도 언제 새 시집이 나오나 서점을 기웃거리는 중이다. 특히나 그의 시는 힘들..

좋은 시 2023.08.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