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향기

문향이 넘나드는 선방입니다

전체 글 1898

경계에서/현경미

경계에서 현경미 고창읍성의 성벽 위를 걷고 있다. 성 안과 성 밖 풍경이 한 눈에 들어온다. 안도 밖도 봄기운으로 한창이다. 성 주변에는 새순은 새순대로, 봄꽃은 봄꽃대로 그 화사함에 눈이 멀 지경이다. 한참을 걸었을까. 기나긴 겨울을 보내고 성벽 밖을 타고 돌던 담쟁이 묵은 가지에서 새순이 돋아나고 있다. 성벽 돌 틈사이로 지금 막 성 안으로 들어 온 듯 담쟁이 새순 하나와 눈이 마주친다. 잠시 마음을 내려놓고 갈 길을 잊은 채 담쟁이 새순을 조심스럽게 어루만져 본다. 굳이 이 비좁은 돌 틈을 지나 안으로 들어와야만 하는 무슨 사연이라도 있었을까. 애처로운 듯 대견한 듯 겨울을 넘긴 담쟁이 새순을 내려다보며 내 마음 벽에 붙어 간혹 따끔거리게도 하던 이야기 하나를 떠올린다. 내게도 기나긴 겨울이 있었다..

좋은 수필 2023.03.29

막돌/김윤선

막돌 김윤선 나는 지금 뒷마당에서 잔돌을 줍고 있다. 제 몸을 가누지 못해 늘 화병에 비스듬히 기대고 있는 행운목이 안쓰러웠는데 마침 친구가 작은 돌멩이를 채워 중심을 잡아준 것을 본 때문이다. 공연히 마음이 달뜨고 바쁘다. 모두가 막돌이다. 바로 전까지만 해도 허접한 돌멩이에 지나지 않았는데 그새 앙증맞기까지 하다. 막 부화한 새끼들 같다. 열 손가락 크기가 다 다르듯 한 마당에서 주웠어도 크기와 색깔이 제각각이다. 검은색이있는가 하면 황색을 띤 것도 있고, 고운 결을 가진 것도 있다. 모서리가 뾰족하니 각진 것도 있고, 동글동글 닳아서 매끄러운 촉감의 것들도 있는 게 그간의 삶에 대한 제 나름의 고집으로 보인다. 소금물에 담가두면 색상이 더욱 선명해진다는 친구의 말이 생각나서 잠시 돌을 양푼에 담갔다..

좋은 수필 2023.03.28

침등(枕燈) / 허세욱

침등(枕燈) / 허세욱 내게 40센티 쇠막대의 전등이 있다. 그 이름도 쓰임에 따라 달랐다. 책상에 있을 때는 서등書燈이요, 베갯머리에 놓일 때는 침등이다. 그 조형이 단조롭거니와 무게도 헐쭉해서 한손으로 들기에 넉넉했다. 1미터 높이의 책상에서 끼적거리다가 나른해지면 슬그머니 그 아래로 눕는다. 바닥에 요를 깔면 당장 침상이 된다. 그 머리에 베개를 놓고 그 바른편에 등을 옮기면 아늑한 촉광의 침등이 된다. 등이 내 총애를 받는 까닭은 그 배꼽에 달린 잠자리 눈깔만 한 스위치의 민첩 때문이었다. 안개처럼 스르르 잠이 몰려올 때 살짝 기지개를 펴거나 손사래 치듯 그 스위치에 손등을 대면 세상은 한 찰나에 어둠이 밀려왔고 나는 그 속에 침몰했다. 그것이 민첩할 뿐 아니라 한 번도 거부한 적이 없었던 것도 ..

좋은 수필 2023.03.28

바닥의 시간 / 문혜영

바닥의 시간 / 문혜영 앞으로 나아가다가 길이 막히거나 삶이 멈춰있다고 생각될 때면, 아들은 자진하여 더 힘든 자리를 찾아 떠나곤 했다. 안일함 속에 길들여지면 방향감각을 잃고, 삶이 무력해진다는 것이었다. 그 첫 번째 시도가 과학 고등학교였다. 집을 떠나 기숙사생활을 해야만 하는 삶을 기꺼이 선택한 것이다. 대학을 진학하고 난 뒤엔 함께 살 수 있어 좋았지만, 실험실에서 자정을 넘긴 시간까지 빠져나오지 못했다. 그런 아들 때문에 학교 가까운 봉천동으로 이사 왔는데, 아들은 또 다시 훌쩍 유성으로 내려가 기숙사와 연구실만 왔다 갔다 하면서 박사과정을 이수했다. 그리고 결혼과 동시에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가 연구를 해보겠다며 샌프란시스코로 떠났다. 서울에서 의학공부를 하느라고 신랑을 따라가지 못한 며느리는..

좋은 수필 2023.03.27

솟구쳐오르기/김승희

상처의 용수철 그것이 우리를 날게 하지 않으면 상처의 용수철 그것이 우리를 솟구쳐 오르게 하지 않으면 파란 싹이 검은 땅에서 솟아오르는 것이나 무섭도록 붉은 황토밭 속에서 파아란 보리가 씩씩하게 솟아올라 봄바람에 출렁출렁 흔들리는 것이나 힘없는 개구리가 바위 밑에서 자그만 폭약처럼 튀어 나가는 것이나 빨간 넝쿨장미가 아파아파 가시를 딛고 불타는 듯이 담벼락을 기어 올라가는 것이나 민들레가 엉엉 울며 시멘트 조각을 밀어내는 것이나 검은 나뭇가지 어느새 봄이 와 그렁그렁 눈물 같은 녹색의 바다를 일으키는 것이나 상처의 용수철이 없다면 삶은 무게에 짓뭉그러진 나비 알 상처의 용수철이 없다면 존재는 무서운 사과 한 알의 원죄의 감금일 뿐 죄와 벌의 화농일 뿐 ― 김승희, 「솟구쳐 오르기 2」 ​ 김승희 시인의 ..

좋은 시 2023.03.27

3월은 봄이 아니다/이복희

3월은 봄이 아니다/이복희 3월은 언제나 몸살처럼 왔다. 한겨울의 추위에 갇혀있던 몸이 해빙기의 지표면처럼 풀어지고 있는 걸까. 실제로 겨울을 잘 넘겨놓고 감기몸살에 시달리곤 하는 것도 다 3월의 일이었다. 성급하게 봄을 기대한 탓인지 추위도 한겨울보다 오히려 심하게 느껴졌다. 3월의 한기는 어디 기댈 곳 하나 없는 외로움처럼 대책이 없다. 오래 앓던 이들이 숨을 놓아버렸다는 소식도 3월에 자주 들려왔다. 그해 3월의 어느 날, 별 이유 없이 한복을 입어 보았다. 집에 있는 자투리 천을 이용해 언니가 만든 것이었다. 감색 바탕에 자잘하게 그려진 하얀 꽃송이들이 봄, 봄하며 어서 입어보라고 소는 대는 것 같았다. 꽃샘추위 속에 포근해진 날씨도 한몫 거들었다. "이쁘네, 우리 딸, 한복 입으니​…." 수선 ..

좋은 수필 2023.03.27

가을이 왔습니다 / 장석주

가을이 왔습니다 / 장석주 눈雪과 죄로 음습한 계절을 지나 산벚꽃 진 뒤 태풍처럼 밀려온 여름이 있었다. 그 여름의 날들엔 쌀독이 비는 것, 시작하는 일과 실패 따위를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제도와 족보, 도덕과 관습에 반항하고, 새벽 풀숲에서 떨어진 별을 주우며 불가능을 꿈꾸었다. 젊음이란 잔고殘高가 두둑했으니 그걸 믿고 방종에 빠졌다. 랭보같이 "바람 구두를 신고" 겁 없이 "해진 호주머니에 손을 찌르고" 세계를 다 떠돌 기세였으나 목포나 군산 선창가 언저리를 헤매다가 돌아오곤 했다. 아직 젊었을 때 행위·열정·지식을 다 털어 넣어 판을 짜느라 골몰했으나 나는 결코 순진무구하지 않았다. 젊음의 질병, 젊음의 나태함, 젊음의 추악함에 대해서라면 할 말이 많다. 젊은 시절에는 누구나 예의 없고, 파렴..

좋은 수필 2023.03.27

남편의 반칙/조영선

남편의 반칙 조영선 독거노인이 되는 것은 순간의 일이다. 그리고 사람은 어이없이 죽을 수도 있다. 남편이 그렇게 타계했고 내가 그렇게 남겨졌다. 100일 전의 일이다. 나이로 보아서는 남편이니(85), 아내(87)인 내게, 그리고 또 어떤 노약자들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우리 부부는 두드러지게 삶의 의욕과 대비가 달랐다. 남편은 모기에게 물려도 병원을 찾는 사람이다. 자고 일어나면 여기저기 몸을 움직여 보고 혹시 불편한 곳은 없나 자가점검을 철저히 한다. 남편은 몸을 신생아처럼 관리한다. 그의 좌우명 중 “첫째는 병은 초기에 잡아야 한다는 것이고 둘째는 완치에 이를 때까지 치료를 받는다.”라는 것이다. 한편 아내는 어떻게 둘러대서라도 병원에 가는 것은 피하고 본다. 웬만한 병은 자연 치료가..

좋은 수필 2023.03.27

아버지의 고무신/예자비

아버지의 고무신/예자비 꽃을 그린다. 하얀 고무신에 정성을 들여 다섯 개의 빨간 꽃잎과 중앙에 노란 수술도 그려 넣는다. 붓 끝에서 작은 꽃밭이 생겨났다. 세상에서 하나뿐인 꽃신이 될 것 같다. 색감은 깔끔하지만 조금 밋밋한 느낌이다. 파란색과 노란색의 물감을 섞어 초록색 잎을 피워놓으니 바람이라도 살랑대며 불어올 것 같다. 마음 같아서는 하늘을 날아오르는 비천상(飛天像)이라도 그려보고 싶지만, 붓끝은 그런 마음을 쉽게 허락하지 않는다. 단장을 마친 꽃 신발을 신고 다녀야 할 것인지, 아니면 장식용으로 두어야 할 것인지 망설여진다. 때가 묻어서 씻게 된다면 애써 그려 넣은 꽃물이 빠지지 않을까 하는 기우가 앞서기도 한다. 가진 만큼 걱정도 많아진다고 하더니, 산란한 마음이 저울질을 한다. 어린 시절 일터..

좋은 수필 2023.03.24

시금치 판 돈 /신숙자

시금치 판 돈 신숙자 서랍에 묵혀 두었던 돈을 꺼내본다. 어머니의 흙냄새가 난다. 구십이만 원, 백만원을 채우려다 기어코 다 채우지 못했다며 내 손에 쥐여 주고 간 어머니의 돈이다. 이 돈이 서랍 속에서 잠든 지 삼 년째 접어들고 있다. 시골 노인네가 시금치를 팔아 이만한 돈을 마련하기란 농부의 딸이 아니었다면 상상하기조차 어렵다. 몇 만원이 아쉬운 시골인데, 팔순 노인네의 모지락스러움이 떠올라 울컥 눈물이 솟구친다. 그해 겨울, 나는 사정없이 휘몰아치는 혹한에 몸과 마음을 가누지 못했다. 살기 위한 치료인지 주검을 부르는 치료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항암치료에 고통스러울 때, 어디서 딸의 소식을 들었는지 어머니가 오셨다. 애달픈 사랑꾼을 보고도 만신창이가 된 나는 희망 없는 천정만을 바라보며 덤덤했다. 거..

좋은 수필 2023.03.24

모탕/김순경

모탕 김순경 땅바닥에 누워 있다. 상처를 움켜쥐고 혼자 뒹군 듯 미동도 없다. 셀 수 없는 도끼질에 정신을 잃었는지 일어날 기력조차 없어 보인다. 상처뿐인 육신은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망가졌지만 누구 하나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 모탕은 나무를 패거나 자를 때 밑에 받쳐 놓는 나무토막이다. 도끼날과 톱날을 보호하고 작업 능률을 높이는 튼튼한 받침대이다. 일단 모탕이 되면 수많은 도끼질을 감내해야 하고 만신창이가 될 때까지 굴레를 벗지 못한다. 얼마나 고통스럽고 험한 길인지도 모른 채 바닥에 누워 까닭도 없이 살점을 뜯어내는 도끼 세례부터 받는다. 한두 번 몸을 비틀어 피해 보지만 힘이 빠지면 순순히 온 몸을 내어놓는다. 그렇게 될 줄 알았으면 자신을 불태워 재가 되는 장작의 길을 택했을 것이다. ..

좋은 수필 2023.03.19

낀 / 주인석

낀 / 주인석 끼인 것은 애처롭다. 틈새에 박혀 꼼짝도 못하고, 무리 가운데 섞여 표시도 안 나며, 어떤 일에 분위기 파악도 못하고 관여하는 것이 끼인 것의 운명이다. 끼인 것치고 대우 받는 것은 거의 없다. 생물에서 무생물까지 끼인 것은 눈치 보며 살아야 하는 초개다. 구석구석 낀 먼지가 그렇고, 백로 무리 속에 든 두루미의 처지가 그렇고, 남의 일에 끼어드는 약방 감초 같은 이가 그렇다. 뭔가 단단히 끼여 서랍이 옴짝달싹하지 않는다. 서랍도 상자라 마구잡이로 물건을 쑤셔 넣기만 했더니, 도대체 열릴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서랍과 나는 손잡이 하나를 사이에 두고 양미간을 치켜 올리며 팽팽한 줄다리기를 한다. 승부가 나지 않을 것 같던 줄다리기였는데, 서랍이 약간의 틈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 사이로 들여..

좋은 수필 2023.03.18

왈바리/주인석

왈바리/주인석 사는 일은 뚜렷한 공식도 방법도 없다. 스스로 부딪히고 깨지며 웃고 우는 가운데 버려지기도 하고 선택되기도 하여 쌓이는 것이다. 삶의 조각이 크다고 좋은 모양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작다고 쓸모없는것은 더더욱 아니다. 작은 조각 하나가 인생을 무너지게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얘는 기형이라요." 쿵 하는 소리로 기겁하는 내게 금방 해산한 사람답지 않게 싱글싱글 웃으며 말한다. 끄응 힘을 주며 일어서는 남자 엉덩이 밑에 시커먼 것이 툭 떨어진다. 여자 몸의 진통 끝에 탄생은 보았어요 남자 밑으로 뭣이 쑥 빠지는 일은 생전 처음이다. 정말로 머리와 몸이 한 덩어리다. 여자들의 손에서 짭짤하고 매콤한 대우를 받아야 할 것이 제 구실을 못하니 남자 엉덩이를 붙잡고 있나 보다. 말 못하는 것일지라도..

좋은 수필 2023.03.18

꽃살문/윤상희

꽃살문 윤상희 화사한 벚꽃길이 길손을 맞이한다. 풍기 나들목을 빠져나와 순흥면에서 벗어나고 있는 길이다. 산골길을 굽이돌아 소백산 국망봉 자락에 다다르자 차 한 대 지나가기 빠듯한 산길이 펼쳐진다. 굽잇길에 들어서자 아랫녘 매화가 향주머니 끈을 풀어놓은 듯 산속의 내음이 풍요롭다. 세속의 소리는 어느새 멀어지고 따스한 봄바람이 옷섶을 열어준다. 인적 드문 산비탈에 이르자 성혈사가 고즈넉이 나를 맞이한다. 절집은 법당 새 채에 스님이 계시는 요사와 수행승방 한 채가 전부이다. 암자라 해도 좋을 소담스런 절의 대웅전 뒤뜰로 부챗살처럼 가지를 펼친 만지송이 장관이다. 세 칸 법당에 달린 보물 832호 꽃살문 여섯 짝을 만나러 아침 먼 길을 달려온 나는 나한전으로 얼른 발걸음을 옮긴다. ​ 조선 명종 8년(15..

좋은 수필 2023.03.18

밑돌, 그 이름처럼 / 허정진

밑돌, 그 이름처럼 / 허정진 돌탑이다. 돌덩이를 아슬아슬하게 하나씩 포개 쌓은 외줄 탑도 있고, 둥글게 높이 쌓아 올린 원추형 탑, 갖가지 의미나 형상을 표현한 조각 같은 탑들도 있다. 무겁고 단단한 돌을 가지고 만 가지 재주를 부린 것 같다. 누군가의 노력과 끈기로 이루어진 결정체다. 왜 쌓았을까? 안녕과 복에 대한 기원이거나, 가슴속에 숨겨둔 간절한 서원이 담겨 있을지도 모른다. 접착제 하나 없이 비바람에 흔들림 없는 돌탑이 되기 위해서는 돌 하나하나에 정성을 쏟을 수밖에 없었겠다. 돌각담이나 성벽, 돌탑을 보면 크고 작은 갖가지 모양의 자연석이 서로 맞물려 하나로 짝을 이루고 있는 것이 신기하기 그지없다. 돌끼리 견고하게 물고 물려 틈새 하나 없는 균형미와 조형미가 단연 돋보인다. 무엇보다 기초가..

좋은 수필 2023.03.17

칠월의 연지 /권현숙

칠월의 연지 권현숙(수필가) hsh89-1216@hanmail.net 장맛비의 행짜에 키를 잃어버린 연잎들 까치발로 버티느라 헉헉 숨이 차다. 작달비의 독한 매질을 용케도 잘 견뎠는데 긴 불땡볕의 시간을 또 건너야 한다. 코로나 시국에 지쳐가는 사람들 끝을 알 수 없는 두려움에 뿌리없는 말들은 장마철 개구리밥처럼 무성하게 증식하고 바닥난 인내심에 진창이 되어가는 가슴은 연신 한숨만 피워낸다. 사나운 날들이라고 맥없이 시들부들 마냥 처져 내릴 수만은 없는 일 가만히 숨을 고르고 발부리에 힘을 모아 푸른 시간을 다시 피워올려야 한다. 고단한 계절을 지나면서도 꼿꼿하고 청아한 자태를 잃지 않는 연처럼 잘 견디는 것이 이기는 것이라는 푸른 믿음을 둥글둥글 펼쳐보여야 하리. 곱고 향기로운 꽃등 환하게 켜들 그날을..

좋은 시 2023.03.17

비평의 종류

비평의 종류 1) 전기비평 작가의 삶과 작품이 어떤 관련성을 맺는가, 한 작가의 작품이 다른 작가의 작품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작품과 작가의 세계관 인생관 정치관 문학관, 좁게는 그의 교육, 생활수준, 독서, 가족 상황, 교우 애정을 다루되 작품과 직접 관련된 부분에 주의를 기울인다. 문학작품을 지나치게 조사하면 과거성에 치우쳐 문학 가치에 소홀할 수 있다. 2) 윤리ㆍ철학적 비평 윤리적 비평은 과거의 체험을 복구하기보다는 오늘의 독자와 관련하여 현재적 가치와 윤리에 초점을 맞춘다. 문학에 반영된 도덕과 철학 문제를 중시하고 집중적으로 밝힌다. 윤리적 비평을 대표하는 담론은 공자가 『시경』에서 말한 사무사(思無邪), 불교의 탐진치, 기독교의 십계명, 권선징악, 플라톤의 현실 모방론 등이다, 작품이 요..

평론 2023.03.17

출가/박종희

출가 박종희 스님이 된 친구를 만나러 간다는 친구를 따라 절에 다녀왔다. 비구니 절이라 그런지 어느 것 하나도 제멋대로 놓여있는 것이 없었다. 화장실이며, 화단, 사방을 둘러보아도 깨끗하고 단정하게 정돈된 절 뜨락에 가을볕이 한 번씩 추임새를 넣을 때마다 가을이 조금씩 물들어갔다. 오랜만에 친구를 만난다는 생각에 잠도 설쳤다는 스님의 이마 위에 여윈 햇살이 얄랑거렸다. 어느 날 갑자기 소식이 끊겼는데 스님이 되어 있더라는 그녀를 친구도 10여 년 만에 만나는 것이라고 했다. 스님은 애써 태연한 척 먼 길 오느라 고생했다며 합장했다. 내 친구와 친구이니 나하고도 친구가 되지만 승복을 입은 그녀한테 감히 말 건네기가 쉽지 않았다. 가을에는 구수한 황차가 맛이 좋다면서 스님은 물을 끓여 물식힘 사발에 부었다...

좋은 수필 2023.03.16

해순 씨/이복희

해순 씨/이복희 “꼬막무침 한 번 더 해 줘야 하는데….” 해순 씨의 눈에 물기가 어렸다. 아무렴 나만큼 아쉬울까. 그녀와 헤어지는 것은 단순히 섭섭한 일이 아니었다. 어쩌면 지금까지와 다른 불편을 당분간 겪을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다분히 섞여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내가 좋아하는 것을 더 주지 못하게 된 것만 안타까워했다. 해순 씨는 내가 일하던 일터에서 청소를 맡아 하는 용역회사 직원이었다. 그럭저럭 십여 년 넘게 한솥밥을 먹었다. 서로 소속이 달랐어도, 우린 그냥 한 식구였다. 함께 보낸 시간이 길다고 정이 드는 것은 아닐 터. 마음이 잘 통했고 나이도 비슷하다보니 어느새 서로 많이 의지하며 지냈다. 가족도 그렇지만 하물며 남이 아닌가. 언젠가는 헤어지는 때가 오기 마련이다. 용역업체가 바뀌면서 그녀..

좋은 수필 2023.03.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