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에서 현경미 고창읍성의 성벽 위를 걷고 있다. 성 안과 성 밖 풍경이 한 눈에 들어온다. 안도 밖도 봄기운으로 한창이다. 성 주변에는 새순은 새순대로, 봄꽃은 봄꽃대로 그 화사함에 눈이 멀 지경이다. 한참을 걸었을까. 기나긴 겨울을 보내고 성벽 밖을 타고 돌던 담쟁이 묵은 가지에서 새순이 돋아나고 있다. 성벽 돌 틈사이로 지금 막 성 안으로 들어 온 듯 담쟁이 새순 하나와 눈이 마주친다. 잠시 마음을 내려놓고 갈 길을 잊은 채 담쟁이 새순을 조심스럽게 어루만져 본다. 굳이 이 비좁은 돌 틈을 지나 안으로 들어와야만 하는 무슨 사연이라도 있었을까. 애처로운 듯 대견한 듯 겨울을 넘긴 담쟁이 새순을 내려다보며 내 마음 벽에 붙어 간혹 따끔거리게도 하던 이야기 하나를 떠올린다. 내게도 기나긴 겨울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