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향기

문향이 넘나드는 선방입니다

전체 글 1891

설 소리꾼/류영택

설 소리꾼 / 류영택 ​ ​ ​ ​ 내가 태어나고 자란 고향마을은 아직도 옛날식으로 초상을 치르는 집이 많다. 그러다보니 계원 누구 중 집안에 초상이 났다하면 만사를 제쳐두고 상여를 매주러 가야만 한다. 초등학교동창 중 몇몇 뜻있는 친구들이 주축이 되어 계를 모았다. 처음 계를 모을 때 친구 간에 우의를 도모하자며 거창하게 졸업 기수를 따서 P동기회란 이름을 지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본래의 뜻은 퇴색되고 언젠가부터 두 달에 한번 씩 모이던 모임이 한 달에 한두 번 상가 집에서 얼굴을 봐야 하는 상여 메는 계로 모양새가 바뀌어 버렸다. 오늘도 부친상을 당한 계원의 상여를 메주기 위해 모였다. 계원들은 삼삼오오 모여 상여가 떠날 시간을 기다렸다. 이 시간이면 상여가 떠날 때가 됐는데도 아무런 기척이 ..

좋은 수필 2021.09.25

인생학교 / 정성희

인생학교 / 정성희 그 학교에는 유독 통과해야 할 문들이 많다. 나는 그곳을 지키는 파수병이다. 사람들은 두터운 성벽으로 둘러싸인 그곳을 큰집이라고도 부른다. 그 주벽(主壁)은 견고한 ‘배타(排他)'라는 벽돌담으로 높이 울타리 쳐져 있기에 밖에서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 하늘도 무너져 있고 땅도 간 곳이 없다. 짙은 안개속의 마법에 걸린 듯 모든 사물들이 실종되어 있다. 마치 사 차원의 블랙홀 세계로 말려가는 착각 속에 시간이 기화되고 공간마저 증발한다. 세상이 한순간 그렇게 정지된 채 정박해 있다. ‘철커덕’하며 철문 닫히는 소리가 들린다. 순간 주위에 있는 사람들을 둘러본다. 모든 상품에 찍힌 바코드처럼 그들 존재를 저울질하는 고유번호가 각각의 가슴위에 붙여져 있다. 모두들 초조하고 불안한 표정들..

좋은 수필 2021.09.25

발바닥/정성희

지렁이/정성희 수필(제12회 전국장애인과 함께하는 문예글짓기대회 대회장상) 발바닥 정 성 희 어찌 저리도 못생겼을까. 작다 못해 땅에 붙은 난쟁이 모습이다. 만물을 창조하신 신조차 고개를 가로젓는다. 신은 그에게 남몰래 어두운 곳에서 소금으로 절여진 밥을 평생토록 빚어내게 명하시며 무기징역이라는 천형을 선고하셨다. 창세기 몇째 날, 창공을 비상하는 새들에게는 씨 뿌리고 곡식을 거두는 수고를 하지 않아도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그들을 먹이신다고 말씀하셨다. 식물들에게는 이파리에 엽록소를 심어주어 햇빛과 물만으로도 굶지 않게 만드셨다. 심지어 하느님이 등 돌린 뱀조차 어쩌면 그보다 나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뱀은 신진대사가 느려 일 년에 단 한 번의 먹이로도 생명을 부지할 수 있으니 말이다. 한 끼의 양..

좋은 수필 2021.09.25

숨비소리/김정은

숨비소리 / 김정은 생명을 건져 올리는 숨소리가 있다. 미지에서 날아든 한 마리의 새가 오래 참아온 인간의 숨으로 소리를 낸다. 인간이 내는 소리지만 흉내 낼 수는 없다. 죽기 직전까지 참아본 자가 살기 위해 내지르는 비명이지만 누군가는 마치 새의 노래 같다고도 한다. 살기 위한 비명이 새의 노래로 들리려면 얼마나 고독해야 했을까. 인간의 고독이 태고의 바다를 만나 비명을 노래로 만들었다. 전사의 한숨들이 모여 외마디 생존 부호가 된다. 오로지 몸뚱어리 하나만 가지고 천년을 산 구렁이의 뱃속 같은 바다를 가로질러 생명을 건져 올리는 이들만이 이 소리를 낼 수 있다. 휘파람마냥 한량도 아니고 한숨처럼 막막하지도 않다. 매일 다른 모습으로 손짓하는 저승사자와 함께 사냥을 나갔다가 살아 돌아온 전사처럼 숨소리..

좋은 수필 2021.09.23

발(簾) / 변해명

발(簾) / 변해명 항라(亢羅) 적삼 안섶 속에 연적 같은 저 젖 보소 담배씨만큼만 보고 가소 더 보며는 병납니더. 읽으면 읽을수록 익살과 은근한 멋이 씹히는 글이다. 우물에서 물동이를 이는 여인이 두 팔로 무거운 물동이를 받쳐 올리노라면 그 힘에 그만 가슴을 조여 매었던 치마 허리가 흘러내리기 일쑤다. 어느 처녀가 우물가에서 물동이를 이다가 그처럼 치마 허리가 흘러내렸다면 순간 연꽃의 씨방 같은 예쁜 젖가슴이 드러나고야 말았을 것이다. 한 겹 아른거리는 항라 적삼에 가리워진 곡선을 슬쩍 훔쳐 본 눈길이 있었다면 담배씨만큼으로도 병이 나지 않을 리 없다. 노출되지도 않았으면서 윤곽이 드러나는, 그래서 더 아름다운 곡선, 은은하면서도 속되지 않은 연연함이 손에 잡힐 듯하다. 여름의 발이 항라 적삼과 같은 ..

좋은 수필 2021.09.23

발 / 박기옥

발 / 박기옥 신문을 보니 미수(88세)를 맞은 할머니가 중환자실에 있는 남편을 위해 발장갑을 뜨고 있는 사진이 나와 있다. 남편의 발이 하루하루 차가워져 가는 것이 안타까워 뜨개질을 시작했다고 한다. 할머니의 연세 또한 가볍지 않으신데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름 가득한 얼굴에 돋보기를 걸치고 남편을 위해 한 코씩 힘들게 뜨개질에 몰두하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짠하다. 에스키모인들의 풍습 하나를 떠올린다. 그들의 신발은 장화다. 추운 지방에서 발을 보호하기 위해 만든 그 폐쇄성 신발은 발목을 감싸는 것이 특징이다. 특히 해변이나 빙설(氷雪), 진흙, 모래땅에서 매몰되거나 미끄러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만든 것이라 벗기다 불편하다. 일터에서 돌아온 남편의 발을 구두 속에서 뽑아내는 것은 아내의 몫이다...

좋은 수필 2021.09.23

발/류귀숙

발/류귀숙 어둠이 산그늘처럼 내려와 앉으면 종종대던 하루가 저물어 간다. 골목길 돌아온 바람결 따라 지친 발을 끌고 하루를 마감한다. 떡시루 같은 지하철을 빠져나오며 헝클어졌던 머리칼을 손으로 빗어 본다. 가장 낮은 곳에 임한 발이 숨죽이며 간신히 뱉어내는 신음 소리가 들린다. 통통 부은 두 발을 따뜻한 물에 담그고 그날의 피로를 날려 보낸다. 손으로 살살 문지르고, 꾹꾹 누른다. 발가락 하나하나를 펴서 그 속에 묻어있는 시름의 때를 벗겨낸다. 아무리 봐도 예쁜 곳을 찾을 수 없다. 자꾸만 불어나는 나의 체중을 받쳐 들고 얼마나 먼 길을 왔는가! 멋없이 커 버린 발이 항변할 것 같아 타박하는 말을 입속에다 가두고 문을 잠근다. 엄지발가락 아래로 조금 내려오니 낙타 등같이 불룩한 등걸이 혹처럼 붙어 있다...

좋은 수필 2021.09.22

뒤웅박 / 윤 미 애

뒤웅박 / 윤 미 애 풍경 밖으로 새들이 날아간다. 감빛 노을이 발묵처럼 번지고 먼 산은 조금씩 어스름에 잠긴다. 뒤란 대숲에 내려앉은 바람의 옷자락이 차갑다. 아비의 손을 잡은 아이가 구름 위의 새떼를 올려다본다. 이윽고 초가 한 칸이 느티나무 뒤에서 고즈넉해질 때, 닭 울음소리가 길게 낙관을 찍는다. 나는 그제야 붓을 내려놓으며 훅!하고 참았던 숨을 뱉어낸다. 유년의 고향 집 싸리 울타리엔 크고 작은 박들이 주렁주렁 열렸다. 이른 봄, 씨앗을 심기 무섭게 새싹이 나면서 넌출은 가뿐하게 울을 넘었다. 초가지붕 위로 올라간 덩굴은 초여름쯤엔 꽃단장하듯 흰 꽃을 수놓았다. 긴 장마와 따가운 햇살을 이기고 가을이 되면, 박들이 울타리며 처마 끝에 박쥐처럼 올망졸망 매달리곤 했다. 아버지는 서둘러 박을 따 내..

좋은 수필 2021.09.21

화로/허숙영

화로 / 허숙영 전통 찻집 장식장 안에 정좌하고 있는 놋쇠 화로를 들여다본다. 화로는 텅 비었으면서도 많은 이야기를 들려줄 듯하다. 거리를 뒤채는 낙엽은 죄다 쓸어버릴 기세의 겨울바람에 등 떠밀려 들어간 그곳에서 화로는 차향보다 먼저 내 마음을 끌어당겼다. 동그랗게 부른 배 둘레를 돋을새김한 당초문이 허리띠를 두르고 세 개의 발로 당당하다. 부식이 시작되어 우둘두둘한 생의 에움 흔적은 힘든 세월을 이겨냈다는 증거이자 훈장이다. 한때는 불덩어리를 가슴에 품은 채 아이들의 발갛게 언 볼과 곱은 손을 펴주는 일에 열정을 쏟은 화로였다. 마음깊이 꾹꾹 눌러 다져넣은 상처야말로 그를 한없이 강하게 만들어 주저앉지 않고 여기까지 오게 되었나 보다. 어쩌면 대장간 모루 위에서 담금질 될 때부터 예견된 일생이었는지도 ..

좋은 수필 2021.09.21

자두의 계절이 돌아왔다/김정화

자두의 계절이 돌아왔다/김정화 일 년을 기다렸다가 먹는 과일이 있다. 딸기의 계절을 거쳐 수박과 포도의 배릿함을 가로지르고 오는 어질어질한 향이다. 풋여름 노을빛을 닮은 색, 한 입 베어 물면 코끝이 찌릿하고 눈허리가 시어온다. 그 과육은 혹독했던 입덧의 기억까지 소환시키는 힘을 지녔다. 자두의 계절이 왔다.우리나라 자두는 유월 중순이면 붉은 물이 들기 시작한다. 나는 해마다 달력의 하짓날에 동그라미를 쳐놓고 첫 자두인 대석 자두를 기다린다. 대석 자두는 알이 작고 딴딴한데 아삭하고 새콤달콤하여 내겐 이것이 진정한 자두의 맛이다. 하지만 출하 시기가 짧아 때를 놓쳐버리면 다시 한 해를 기다려야 하는 아쉬움이 따른다.첫 자두 맛을 넘기면 속살이 연한 후무사 자두가 입을 즐겁게 해 준다. 본격적인 여름이 시..

좋은 수필 2021.09.21

오막살이 집 한 채 / 김정화

오막살이 집 한 채 / 김정화 올 여름. 나는 뜻밖의 횡재를 했다. 늘상 마음 속으로만 갈망해 왔던 오막살이 집 한 채를 갖게 된 것이다. 마당 앞으론 청계류가 흐르고 물레방아가 돌고 있는 그림 같은 집이다. 지붕 위에 크고 작은 박들이 소담하게 열려 있고, 장독대엔 올망졸망 항아리들이 정갈하게 놓여 있는 풍광은, 오매불망 꿈속에서 그리워했던 모습 그대로였다. 금방이라도 정지문이 열리면서 하얀 무명베 수건을 머리에 두른 할머니가 함지박 가득 김이 무럭무럭 나는 옥수수를 담아 들고 나올 것만 같고, 갓 바른 탱글탱글한 창지문을 열고 하얀 수염의 산신령 같은 할아버지가 봉당으로 내려설 것도 같았다. 아니 까마득한 내 유년이 거기 냇물 속에, 장독대에, 창호문에 그대로 살아 오르고 있었다. 어린 시절 외가는 ..

좋은 수필 2021.09.21

달을 새기다 / 김정화

달을 새기다 / 김정화 주인장이 기막히게 전을 구워낸다. 지인을 따라왔다가 알게 된 이곳은 애주가라면 지나는 길에 한잔 걸치기 딱 좋은 선술집이다. 집 근처에 있어 반가운 손님이라도 오면 저절로 찾게 되는 곳이다. 드문드문 들렀으나 한 번도 내 얼굴을 기억하지 못하는 주인이 나는 참으로 편하다. 주로 말을 하는 직업이다 보니 술집에서조차 입을 다물고 싶은 심정을 헤아려 주기라도 하듯이 눈길도 마주치지 않고 안줏거리 장만에만 손길이 바쁘다. 그러니 민얼굴에 보풀진 스웨터만 걸쳐도 민망치 아니하고 누구와 가든 무슨 대화를 나누든 눈치 보이지 않는다. 이럴 때면 딱히 튀지 않고 지극히 평범한 내 외양이 무척 다행이라 여겨본다. 나 또한 기억력이 흐릿하고 눈썰미가 신통찮다. 사람이나 물고기나 나무의 생김새를 들..

좋은 수필 2021.09.21

누군가의 남해/박지웅

누군가의 남해 박지웅 꽃분을 깼다 삽시간에 신발 벗겨진 꽃이 바닥에 나동그라졌다 꽃은 생전 처음 제 발을 보았다 사막으로 쫓겨난 쓸쓸한 발이었다 마당 밖까지 맨발로 내쫓긴 날 나는 풀어진 보자기 같은 발로 겨우 꽃나무 아래까지 걸어갔다 발등에 하염없이 꽃그늘을 얹도록 아무데도 갈 곳이 없었다 언젠가부터 길을 두고 머뭇거리는 일이 잦았다 하지 말아야 할 말들을 밀어내느라 그랬을 테지만 발아래 애먼 흙바닥만 문지르던 날 나도 누군가의 길을 허물었을 것이다 저 꽃분 속에도 꽃이 연 길이 있을 것이다 가만히 꽃의 발을 모아 신발을 신겨준다 헐거운 신에 맞추느라 꽃이 뒤꿈치를 몇 번이나 들었다가 놓는다 매실나무 아래 꽃신 한 짝 내려주는데 꽃배 같았을까 목깃에 묻은 흙 털어주니 때맞춰 멀리 나갔던 매실그늘이 돌아..

좋은 시 2021.09.21

자루의 등뼈/이정희

자루의 등뼈 이정희 커다란 입 하나 가진 자루는 바닥의 비애를 잘 안다 바닥의 바닥이 중심을 잃는다 등을 곧추세우는 것은 바닥을 헤어나는 것만큼이나 힘든 일 자루는 먹어치운 만큼 고스란히 토해놓는다 그건, 그의 일 입 하나로 하루를 산다 등의 너머는 그의 것이 아니어서 힘껏 달려가면 늘 뒷걸음친다 한 뼘의 직립도 세우기 힘든데 억지로 세운 등뼈는 가끔 고꾸라진다 그때마다 하루는 쭈글거린다 무얼 담아도 묵묵한 자루 마음껏 먹어도 체하지 않는다 자루에서 뼛조각 서걱거린다 혼자 세울 수 없는 헐렁한 뼈들 여럿이 함께 기대면 쉽게 세워진다 하루치의 시간과 바람이 들어 팽팽하게 조여 올 때 질기고 억센 바닥을 딛고 가파른 등뼈를 세운다 ​알고 보면 밤과 낮도 자루의 먹이다

좋은 시 2021.09.21

풍차 / 김영식

풍차 / 김영식 바람을 독법 하는 저 수직의 삶이라니. 표표한 공중의 벼랑에 뜨거운 심장을 걸어놓고 제 삶의 중심을 응시하는 고독한 아나키스트. 거인처럼 우뚝 솟아 수평선 너머를 예지하는 수도승의 모습으로. 바람의 시원始原이자 바람의 완결자인 그는 바람이 머무는 육체이자 바람의 정신을 이루는 뇌다. 찰나 속에서 영원을 꿈꾸며 영원 속에서 찰나를 완성하는 은둔의 철학자이다. 멀고 가까움과 높고 낮음과 강하고 약함과 생성과 소멸을 한 몸에 아우르고 있는 시간의 아메바다. 빛나는 비굴절의 이마를 가진 그는 한 번도 삶을 등지거나 회피하거나 우회한 적이 없다. 직립의 우직함은 언제나 정공법을 선택한다. 변화지향주의자인 구름은 그런 그를 보고 평면적이라거나 비타협적이라며 비판하지만 그건 천성이 정직하기 때문이다...

좋은 수필 2021.09.19

혀, 큰주부홍부전나비 한 마리/김영식

혀, 큰주홍부전나비 한 마리 / 김영식 이 나비는 입속에 살고 있다. 큰주홍부전나비 한 마리. 날개가 하나 뿐인, 외눈박이 키클롭스처럼. 그 날개에 찍힌 자줏빛 돌기. 모든 돌기는 외롭다. 천 길 벼랑 끝에 둥지를 틀고 날마다 잃어버린 제 날개를 찾아디니는. 비익조는 암수의 눈과 날개가 하나여서 짝을 짓지 않으면 날지 못한다. 날지 못하는 새, 날지 못하는 나비, 평생 한쪽 날개로만 살아가는 것들의 지난한 운명. 선천적 슬픔. 외날개를 가진 큰주홍부전나비는 언제부터 캄캄한 어둠 속에 혈거穴居하고 있었던 걸까? 이름 모를 행성에 불시착한 우주선처럼. 수컷은 앞, 뒷날개 외연을 제외한 전체가 주황색으로 되어 있어 무늬가 없다. 풀 잎 위에서 날개를 펴고 자주 일광욕을 즐긴다. 암컷은 앞날개 윗면에 검은점무늬..

좋은 수필 2021.09.19

소라 여인숙/김영식

소라 여인숙 / 김영식 여인숙이 많은 시절을 건너왔다. 지금은 여관이나 모텔로 이름이 바뀌었지만 내가 살던 항구도시에는 여인숙이 즐비했다. 삶에 대해 고뇌하던 이십대의 한때 외딴 바닷가 여인숙에 잠시 투숙한 적이 있었다. 생각해 보면 그때처럼 삶에 대해 진지해본 적이 있었던가? 그 시간을 떠올리며 쓴 시가 강원일보 신춘문예 시부문 당선작인 `소라 여인숙'이다. ​ 눈물 젖은 빵을 먹어보지 않은 사람과는 인생을 논하지 말라는 말이 있다. 나는 여인숙에 한 번도 들지 못한 사람과는 生에 대하여 얘기하지 않을 것이다. 채송화며 봉선화 핀 마당을 지날 때면 발자국마다 따라오던 둥근 파도 소리. 등 굽은 여주인이 시큰둥하게 내미는 숙박계에 세상에 없는 주소를 꾹꾹 눌러 적을 땐 낡은 페이지마다 푸드득! 수천 마리..

좋은 수필 2021.09.19

나도 수필작가가 될 수 있다/대전시민대학강좌

※ 2021년 대전시민대학 4학기 수강신청 알립니다※ 강좌: 나도 수필작가가 될 수 있다 수필은 우리의 삶을 의미화하는 문학입니다. 일상의 삶에서 나를 찾고 자아실현를 할 수 있습니다. 강돈묵 교수님의 지도 아래, 자신의 삶을 글로 펼치실 분, 인생을 재발견 하실 분 환영합니다. 대전시민대학 이론반 : 2021.10.14(목)~2021.12.2(목)/총 8주 수업시간: 목요일 오전 10:00~12:00 강좌명: 나도 수필 작가가 될 수 있다 *수강신청기간 : 9월 27(월) 09:00~10.6(수) 17: 00까지 *개설확정: 신청인원 7명 이상 개설 *신청방법: 인터넷접수 (http://www.dile.or.kr/CrsCreCrsHome.do?cmd=listSmCourse&svcCd=SM) 연구실 심화..

좋은 수필 2021.09.17

밤을 주우며 / 김만년

밤을 주우며 / 김만년 이맘때의 숲은 풍성하다. 열매들은 실팍하게 살이 오르고 다람쥐들은 겨울 양식을 모으느라 분주하다. 툭툭, 시간의 여백을 타고 알밤들이 떨어진다. 몇 알은 개울로 굴러가고 몇 알은 여뀌 풀 틈새로 숨는다. 나는 밤의 행방을 쫓아 풀섶으로 몸을 낮춘다. 반지르르 윤기 나는 놈은 금방 출타한 알밤이다. 어쩌다가 삼형제 밤이라도 만나면 횡재를 한 기분이다. 성급하게 떨어진 밤송이들도 더러 눈에 띈다. 아직 설 여물었는지 밤은 두피를 바짝 밀착시키고 완강하게 버틴다. 밤송이가 손마디를 따끔따끔 찌른다. 가시를 세우는 폼이 둘째 녀석의 모습과 흡사하다. "여보 우리도 반려견이나 한 마리 키울까. 반려견은 꼬리치는 맛이라도 있잖아." 얼마 전 퇴근 무렵 아내가 나에게 불쑥 던진 말이다. 평소에..

좋은 수필 2021.09.16

조선 개똥이 / 이난호

조선 개똥이 / 이난호 ​ ​ 언제부터인가 일상용어 속에서 알게 모르게 금기시되어 자취를 감춘 단어 중에 '조선'이란 말이 있다. 어떤 단어 앞에 이 '조선'이란 말이 붙으면, 마냥 소박한 것, 가장 우리 것다운 것으로 쑥 다가왔고 얼마쯤은 진국이라는 다소 예스런 의미의 어떤 향수까지 묻혀와 단박 유년기 저쪽을 기웃거릴 수 있었는데, 가령 '조선 참외' 하면 개구리참외나 작고 동글반반하고 샛노란 참외를, '조선무' 하면 짤막하고 통통하고 속이 단단해서 날것으로 먹기는 맵고 빡빡하지만 일단 김치류로 갈무리되면 긴 겨울을 나고도 다음해 한여름까지 생생하니 든든한 밑반찬으로 버텨주는 무를 일컬었던 것이다. 조선간장은 어떤가. 햇콩을 오래 삶아 빚어 띄운 메주로 역시 제 입맛에 간 맞춰 담근 재래식 장, 이곳에..

좋은 수필 2021.09.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