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향기

문향이 넘나드는 선방입니다

2024/01/16 3

이재무 시 모음

공중전화 ​ 이재무 ​ 아날로그의 고집이여, 자랑으로 붐비던 날들 아득한 전설이 되었구나 한창때 너는 잘나가는 몸으로 식욕 또한 왕성해서 뜨겁고 짜고 맵고 싱겁고 차가운 수천, 수많은 사연 다 삼키고도 뜨거웠지만 늙은 창부가 된 오늘 식어버린, 허기진 몸으로 누군가 인색하게 떨군 은화 몇 닢의 동냥 허겁지겁 삼키는구나 시대의 모든보이 시민의 교양이었지만 뒤처진 애물단지가 되어 생의 수건만을 기다리게 되었구나 생각하면 창부 아닌 삶 어디 흔하랴 줄고 새는 영혼 부풀려 팔고 돌아오는 길 뚜쟁이처럼 서서 호객하는 너를 보는 일 편치 않다 너는 필요보다 크고 무겁고 느리다 네 고집은 불편하다 후불을 모르는 시대의 지지진아 그나마 식은 몸일망정 찾아와 주린 정 채우고 가는 무일푼 고객마저 외면하는 날 올 것인가 ..

좋은 시 2024.01.16

스며든다는 것 / 안도현

스며든다는 것 / 안도현 ​꽃게가 간장 속에 반쯤 몸을 담그고 엎드려 있다 등판에 간장이 울컥울컥 쏟아질 때 꽃게는 뱃속의 알을 껴안으려고 꿈틀거리다가 더 낮게 더 바닥 쪽으로 웅크렸으리라 버둥거렸으리라 버둥거리다가 어찌할 수 없어서 살속으로 스며드는 것을 한때의 어스름을 꽃게는 천천히 받아들였으리라 껍질이 먹먹해지기 전에 가만히 알들에게 말했으리라 저녁이야 불 끄고 잘 시간이야 연탄 한 장/ 안도현 또 다른 말도 많고 많지만 삶이란 나 아닌 그 누구에게 기꺼이 연탄 한 장 되는 것 방구들 선득선득해지는 날부터 이듬해 봄까지 조선팔도 거리에서 제일 아름다운 것은 연탄차가 부릉부릉 힘쓰며 언덕길 오르는 거라네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알고 있다는 듯이 연탄은, 일단 제 몸에 불이 옮겨 붙었다 하면 하염없이..

좋은 시 2024.01.16

김시습의 「나는 누구인가自寫眞贊」 평설 / 신형철

김시습의 「나는 누구인가自寫眞贊」 평설 / 신형철 나는 누구인가 —자화상에 부쳐自寫眞贊 김시습 이하李賀를 내려다볼 만큼 俯視李賀 부시이하 조선 최고라 했지. 優於海東 우어해동 드높은 명성과 헛된 기림 騰名謾譽 등명만예 어찌 네게 걸맞을까? 於爾孰逢 어이숙봉 네 몸은 지극히 작고 爾形至眇 이형지묘 네 말은 지극히 어리석네. 爾言大侗 이언대동 네가 죽어 버려질 곳은 宜爾置之 의이치지 저 개굴창이리라. 丘壑之中 구학지중 ※ 정길수 편역, 『길 위의 노래』 (돌베개,2006) .......................................................................................................................................

평론 2024.01.16